The Great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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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by Roger Pic, 1977, Public Domain (released by the photographer) · Wikimedia Commons (resized/recompressed derivative) · Public Domain

건축가 · 현대

오스카 니마이어

1907–2012

주요 업적 분야

예술공학문화

핵심 특성


삶의 궤적

1907 —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1934–1943 — 리우 국립미술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해 졸업한 뒤, 루시우 코스타의 팀에 합류해 이후 10년간 주요 모더니즘 작업에 참여했다.

1956–1960 — 쿠비체크 대통령의 직접 초청을 받아 코스타와 함께 브라질리아의 정부·행정 중심부를 4년 만에 설계하고 건설했다.

1964–1965 — 군사 쿠데타 이후 그의 사무실이 수색당하고 의뢰인들이 자취를 감췄다. 브라질리아 대학교 동료 약 200명과 함께 항의의 뜻으로 사임했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1965–1985 — 20년에 걸친 망명 기간 동안 여러 나라에 걸친 국제적인 활동을 이어갔고, 군사 독재가 끝난 뒤 브라질로 돌아왔다.

2012 — 104세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업적

그는 대통령궁, 국회의사당, 대성당, 대법원을 포함한 브라질리아의 정부·행정 중심부 전체를 4년 만에 설계하고 완성했다 — 쿠비체크 대통령이 니에마이어의 자택으로 직접 찾아와 부탁한 뒤, 그의 옛 스승 루시우 코스타와 함께 작업한 결과였다.

브라질에서 망명해 지낸 20년 동안, 그는 프랑스·알제리·이탈리아·포르투갈·레바논에 걸쳐 국제적으로 분산된 설계 실무를 이어갔다 — 현장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 우편만으로 완성한 미국 내 두 건의 의뢰를 포함해서였다 — 동시에 딸 안나 마리아와 함께 가구 디자인 작업도 함께했다.


삶의 장면들

91세에 그는 영국 왕립건축가협회의 로열 골드 메달을 수상했지만 직접 런던을 방문해 상을 받지는 않았다 — 실제 비행 공포증 때문이었다고 전해지며, 원격·국제 의뢰 위주로 쌓아온 경력과는 대조되는 구체적인 개인적 한계였다.

101세에, 그의 특유의 곡선이 여성의 몸을 형상화한 것이 아니냐는 — 그의 가구 디자인 보도에서도 되풀이되었고 자연에서 곡선의 언어를 끌어온다는 그 자신의 회고록과도 맞닿아 있던 — 질문을 직접 받자, 그는 딱 잘라 부인했다 — '형태는 아무것도 아닌 데서 나온다.'

100세를 눈앞에 두고도 그는 자신의 계속되는 작업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표현했다 — '나는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려고 했을 뿐이다' — 여전히 매일 아침 계단을 올라 자신의 펜트하우스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일했고, 101세에도 은퇴를 실제 선택지로 여기지 않은 채 언론 미팅과 설계 작업이라는 고정된 일과를 지켰다.


전환점

1964년 군사 쿠데타 이후 그의 사무실은 급습당했고 의뢰인들은 자취를 감췄다. 이듬해 그는 브라질리아 대학교 교수 약 200명과 함께 대학에 대한 정부의 처우에 항의하며 집단으로 사직했다. 한 정부 각료가 '공산주의 건축가가 있을 곳은 모스크바'라고 말했다고 전해질 만큼 직접적인 직업적 박해에 직면하자,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누그러뜨려 브라질에 남는 대신 1965년 프랑스로 망명을 택했다.

경력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신념을 저버리는 대신 망명과 의뢰 상실을 감수한 것은 프로필의 독립적 사고(independent_thinking)와 위험 감수(risk_tolerance) 점수와 부합한다. 독립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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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