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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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Farnsworth, yearbook portrait, The Banyan (Provo: student body of Brigham Young University, 1924); photographer not credited (Commons: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in the United States because published before 1931; downloaded from Wikimedia Commons and re-encoded, not resized · The Banyan (Brigham Young University yearbook, Provo, Utah), 1924 volume -- yearbook portrait in the 'Fourth Years' (high-school seniors) section, via Wikimedia Commons (cleaned crop of the same photograph, Commons source credit to the Utah State Historical Society 'I Love History' page) · Public domain (PD-US-expired)

발명가 · 20세기

필로 판즈워스

1906–1971

주요 업적 분야

기술공학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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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1934년 여름 판즈워스의 연구소는 필라델피아 프랭클린 연구소에서 자사의 전자식 텔레비전 시스템을 일반에 공개하는 시연을 열어, 입장료를 낸 관람객에게 옥상과 건물 곳곳의 공연자와 풍경을 중계했다. 시연 기간은 자료에 따라 열흘에서 약 3주까지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1939년 판즈워스의 회사와 RCA는 특허 사용권 계약을 체결했고, RCA는 지속적인 로열티를 지급하기로 했다. 그로스(Gross)는 이를 RCA의 통상 방침에서 벗어난 이례적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회사 후원자였던 에버슨(Everson)은 협상이 1939년 5월부터 9월까지 이어졌으며 회사 사장과 특허 담당 책임자가 이끌었고 판즈워스 본인은 메인 주에 있었다고 적었다.

레멜슨-MIT에 따르면 1950년대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핵융합이 판즈워스의 주된 연구 관심사였다. 마리엇 도서관의 자료 안내서(finding aid)는 그가 ITT에서 직원들과 함께 '퓨저(fusor)'라 부른 실험용 핵융합 관 여러 개를 만들었으나 반응은 약 30초를 넘지 못했으며, 1967년에는 이 연구를 브리검영 대학교로 옮겼다고 적고 있다.


삶의 장면들

1926년 여름, 아직 성년이 되지 않았던 판즈워스는 샌프랜시스코의 크로커 퍼스트 내셔널 은행에서 은행가들에게 자신의 구상을 설명했다. 그 자리에 있던 에버슨에 따르면 판즈워스는 움직이는 부품이 없는 방식이라고 설명했고, 신문의 망점 사진을 이용해 초당 얼마나 많은 화소를 전송해야 하는지 보여 주었으며 은행가들의 질문에도 답했다. 은행 측 기술자가 이미 그의 명세서를 검토해 둔 상태였고, 은행가들은 이 연구를 후원하기로 했다.

에버슨은 이 자리에서 판즈워스가 기계식 주사 방식으로는 필요한 속도를 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고 회상한다. 이는 자신의 접근법을 당시 주류 방식과 분명히 대비시키는 태도와 부합하지만, 이 말은 후원자가 23년 뒤에 기록한 것이다. 독립적 사고

그로스는 웨스팅하우스와 RCA에 관련된 기술자 블라디미르 즈보리킨이 판즈워스의 샌프랜시스코 연구소를 방문한 시점을 1930년으로 보며, 이는 투자자들이 판즈워스에게 기업 파트너를 찾으라고 촉구한 뒤의 일이었다. 에버슨은 즈보리킨이 며칠간 머물렀고, 판즈워스와 후원자들이 모든 것을 보여 주는 일이 상당한 위험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기로 했으며, 즈보리킨이 클리프 가드너(Cliff Gardner)가 수상관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청했다고 기록했다.

이 일화는 협력 관계의 가능성을 얻기 위해 경쟁자에게 계산된 노출을 감수하려는 태도와 부합한다. 다만 그 추론은 판즈워스 본인의 말이 아니라 에버슨의 서술에서 나온 것이다. 위험 감수


전환점

필라델피아의 필코 공장에서 약 2년을 보낸 뒤 판즈워스는 1933년에 그곳을 떠나 필라델피아 인근에 자신의 회사와 연구소를 세웠다(에버슨은 새 연구소를 1934년으로 적는다). 그로스는 새 회사 덕분에 그가 외부의 간섭 없이 수상관을 개량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에버슨은 필코의 생산 목표가 선행 연구로 폭넓은 특허 체계를 구축하려던 판즈워스의 목표와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이 결별은 자신의 연구 방향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성향과 부합하지만, 필코 자체의 목표와 재정 사정도 영향을 미쳤다. 자율성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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