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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Los Angeles Times, 20 March 1930; Los Angeles Times Photographic Archive, UCLA Library Special Collections (via Wikimedia Commons) · Los Angeles Times photograph of Orozco on his arrival at a Los Angeles train station, 20 March 1930, published with a Los Angeles Times article of 21 March 1930 (page A9); glass negative in the Los Angeles Times Photographic Archive, UCLA Library Special Collections (identifier uclamss_1429_b3720_G3540). The file is the original 3774 x 4375 scan downscaled to 1035 x 1200 with no cropping and no upscaling. · Public domain in the United States (published in 1930, more than 95 years ago); UCLA Library also offers the scan under CC BY 4.0

화가 · 20세기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1883–1949

주요 업적 분야

예술문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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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그는 리베라, 시케이로스와 함께 1920년대 멕시코시티 국립예비학교 벽화로 멕시코 벽화 운동의 시작을 이끈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며, 브리태니커는 그를 프레스코로 작업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벽화가로 꼽는다.

1930년대 말 그는 과달라하라 오스피시오 카바냐스 예배당의 프레스코를 그렸고, 그중 '불의 인간' 돔 벽화를 유네스코는 20세기 벽화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한다.

미국에서는 포모나 대학의 〈프로메테우스〉(1930)와 다트머스 대학의 24개 패널 〈아메리카 문명의 서사시〉(1932-34)를 그렸으며, 국가 사적지가 된 이 벽화는 멕시코 벽화를 미국 관객에게 알리는 데 기여했다.


삶의 장면들

1940년 6월 그는 관람객에게 열린 현대미술관 전시실에서, 어떤 순서로도 돌리거나 재배열할 수 있는 석고 패널 여섯 장에 프레스코를 그렸다.

이는 고정된 벽면 구성을 반복하기보다 프레스코 형식의 한계를 시험한 예술가의 모습과 일치한다. 창의적 독창성

1930년 포모나에서 그는 숙련된 미장공 곁에서 약 2제곱야드 단위로 진짜 프레스코를 그렸고, 색이 고르게 마르도록 매일 같은 시각에 작업을 시작했다.

이는 프레스코의 기술적 규율을 작업의 일부로 여긴 화가의 모습과 일치한다. 숙련 지향


전환점

1927년 멕시코 정부가 벽화가들에 대한 후원을 거두자 그는 뉴욕에 정착해 포모나, 뉴스쿨, 다트머스의 벽화로 명성을 쌓았고, 1934년 멕시코로 돌아와 순수미술궁에 〈카타르시스〉를 그렸다.

이는 멕시코에서의 국가 후원에 의존하던 데서 국제적 입지를 쌓은 뒤 귀국하는 쪽으로 옮겨간 전환과 일치한다. 성취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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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