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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in Langdon Coburn, 1913 (published in Men of Mark, 1913) · Alvin Langdon Coburn, 'Henri Matisse, Paris, May 13th, 1913', photogravure in Men of Mark (London and New York, 1913), via the New York Public Library Digital Gallery (image 301435 / id 483434) and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published in the United States in 1913; Coburn died 1966, so the US public-domain basis is publication before 1931)

화가 · 20세기

앙리 마티스

1869–1954

주요 업적 분야

예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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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1905년 파리 살롱 도톤(가을 살롱)에서 마티스는 앙드레 드랭과 함께 콜리우르에서 보낸 여름의 결과물을 선보였는데, 대담하고 비사실적인 색채로 그린 작품들이었다. 테이트는 비평가 루이 복셀이 이 전시를 보고 그들에게 '야수'를 뜻하는 '레 포브'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한다. 스타인의 회고록에 따르면 아내 아멜리를 그린 「모자를 쓴 여인」은 관람객의 조롱을 받았으나 레오와 거트루드 스타인 남매가 사들였다. 1906년에 마티스는 「삶의 기쁨(Le Bonheur de vivre)」을 완성했는데, 뉴욕현대미술관(MoMA) 도록은 이 작품을 1909~1910년에 무르익은 장식적 양식의 출발점으로 본다. 이 그림은 훗날 반스 재단이 스타인 가에서 사들였다.

1909년 봄 러시아의 수집가 세르게이 시추킨은 모스크바 저택의 계단실을 장식할 패널을 주문했고, 오간 서신 끝에 두 사람은 '춤'과 '음악'이라는 두 주제로 합의했다. 시카고미술관은 마티스가 이 주문으로 받은 대금으로 이시레물리노에 조립식 작업실을 구입했다고 전하며, 1910년으로 표기된 「음악」은 지금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있다. 1930년에는 앨버트 반스가 반스 재단 중앙 전시실에 들어갈 마티스의 첫 본격적 벽화 「춤」을 주문했다. 비평가 제드 펄은 1년 넘게 작업한 뒤 공간 크기를 잘못 계산한 것이 드러나 마티스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으며, 그는 채색한 종이를 잘라 배치하는 방식으로 구도를 잡았다.

1947년 파리의 출판인 테리아드가 펴낸 『재즈』는 채색한 종이를 오려 붙여 만든 도판 스무 점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도판 앞에는 마티스가 직접 손으로 쓴 글이 실려 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도록은 이 작업의 도안이 1943~1944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며 그의 첫 본격적인 종이 오리기 프로젝트로 소개한다. 같은 도록에 따르면 1950년 마지막 조각, 1951년 마지막 회화를 만든 뒤 1950~1952년에는 종이 오리기가 큰 작업의 유일한 매체가 되었다. 테이트 모던이 2014년에 연 전시는 1936년부터 1954년 사이에 만든 작품 120점을 선보였고, 「달팽이」(1953)도 포함되었다.

마티스는 1948년부터 1951년까지 방스의 도미니크회 수녀들을 위해 로사리오 예배당을 설계했다. 건물 도면은 물론 노랑, 초록, 파랑의 스테인드글라스, 흰 도자 타일에 그린 대형 선화 세 점(성 도미니크, 성모자, 십자가의 길), 그리고 가구와 제구, 사제복까지 그의 손을 거쳤다. 방스시에 따르면 초석은 1949년 12월 11일에 놓였고 예배당은 1951년 6월 25일에 봉헌되었으며, 이 봉헌식에서는 결점이 있더라도 이 작품을 자신의 걸작으로 여긴다는 마티스의 글이 낭독되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도록은 그가 예배당의 마지막 작업으로 전례 색깔에 맞춘 사제복 여섯 벌을 디자인했다고 덧붙인다.


삶의 장면들

1947년 『재즈』가 출간되었을 때 마티스는 이 책을 '완전한 실패'라고 불렀다. 인쇄된 종이 오리기 구성이 완성된 원작이 아니라 조각 퍼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두 달 뒤 그는 원작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책 자체가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쓰면서, 책이 화가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전해 들은 이야기를 근거로 들었다.

완성된 책을 실패라 평가했다가 화가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듣고 두 달 만에 다시 따져 본 일은 믿음 갱신과 부합한다. 이 서술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도록에 인용된 그 자신의 글에 바탕을 둔다. 입장 수정 성향

1916년 7월 마티스는 샤를 카무앵에게 '모로코 그림'(훗날 「모로코 사람들」)에 한 달을 매달렸더니 마음이 완전히 흔들렸다고 쓰면서 '나는 참호에 있지는 않지만, 내가 만든 최전선에 있다'고 적었다. 시카고미술관은 1916년에 그가 「등」, 「강가의 목욕하는 여인들」, 「자네트」 작업도 다시 잡아, 이전의 긁어내고 새기는 방식 위에 새 물감을 더해 나갔다고 전한다.

오래 끌어온 작품들로 되돌아가고, 힘겨운 싸움이라 묘사하면서도 까다로운 캔버스를 놓지 않은 모습은 끈기와 부합한다. 이 서술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인용한 그의 편지와 시카고미술관의 큐레이터 설명에 의지한다. 끈기


전환점

1913년 두 번째 모로코 여행에서 돌아온 마티스는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이전 작업의 특징이던 색채보다 형태의 구조를 우선했다. 시카고미술관은 그해 5월부터 12월까지 완성한 회화가 세 점뿐이었고, 「강가의 목욕하는 여인들」과 「등」 같은 이전 작업을 계속 붙들었으며, 가을에 판화를 다시 시작했다고 전한다. 1917년부터는 이런 실험적 방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그해 말 니스에 정착했다.

이름을 알린 방식을 접고 생산량을 줄여 가며 다른 방식을 시험한 일은 실험 정신과 부합한다. 이 서술은 그 자신의 편지를 인용한 시카고미술관 큐레이터 페이지에 바탕을 둔다. 실험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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