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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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Culturespaces, 2018, CC BY 3.0 · Wikimedia Commons, 'Fernando Botero (2018).jpg' -- an image of Fernando Botero by Culturespaces dated 20 April 2018, taken from a Culturespaces video released under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licence on YouTube; uploaded to Commons on 17 May 2018 and reviewed on 30 June 2018 by license reviewer Leoboudv, who confirmed the stated licence at the source on that date. Original 629 x 838 pixels (254 KB on Commons; downloaded file 259,941 bytes opens as a 629 x 838 JPEG); saved unchanged, never upscaled. Caveat: the Commons page identifies the source as a video on YouTube rather than an institutional photograph page; the licence rests on the reviewer's confirmation of the creator's Creative Commons release, and no conflicting notice was found. · CC BY 3.0

화가 · 20세기

페르난도 보테로

1932–2023

주요 업적 분야

예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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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1956년 멕시코에서 만돌린 정물화를 그리던 중 형태의 부피를 키우는 방법을 찾았고, 이것이 '보테리스모'라 불리는 풍만한 양식의 바탕이 되었다. 뉴욕현대미술관은 1961년 그의 「열두 살의 모나리자」를 사들였지만, 비평가들은 오랫동안 이 양식을 두고 논쟁했다.

1970년대부터 풍만한 인물과 동물, 손을 본뜬 대형 청동 조각을 만들었고, 1993년 샹젤리제 전시와 뉴욕 파크 애비뉴 등 도심 곳곳에 놓였다.

2000년 보고타 보테로 미술관을 위해 공화국은행에, 메데인 안티오키아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했고 메데인 보테로 광장에는 그의 조각이 놓여 있다. 2004~05년 아부 그라이브 연작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도서관에 기증했다.


삶의 장면들

2004년 시모어 허시의 아부 그라이브 보도를 읽은 뒤 약 14개월 동안 수용소 학대를 그린 회화와 소묘를 작업했고, 여러 미국 미술관이 전시를 거절한 끝에 2007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가 미국 첫 전시를 열었다.

이는 판매 계획 없이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직업적·평판상의 위험을 감수하려는 태도와 부합한다. 위험 감수

로잘린드 크라우스와 아서 단토 같은 평론가들은 그의 작업을 일축했고, 그는 1985년 인터뷰에서 1972년 전시 이후 뉴욕 언론이 침묵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같은 구상 언어로 계속 작업했으며 가디언에 따르면 80대에도 하루 열 시간씩 일했다.

이는 오랜 비평계의 외면 속에서도 택한 표현 언어를 고수한 끈기와 부합한다. 끈기


전환점

1956년 멕시코로 옮긴 그는 만돌린 정물화를 그리다가 형태의 부피를 키울 수 있음을 발견했고, 과장된 비례는 그의 대표 양식의 바탕이 되었다.

이는 이후 작업의 방향을 정한 출발점이었음과 부합한다. 창의적 독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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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