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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tienne Fessard after Jean-Marc Nattier, Portrait of Émilie du Châtelet, print, Rijksmuseum, Amsterdam (RP-P-1910-5050), public domain · Engraved portrait of Émilie du Châtelet by Étienne Fessard (named on the print) after a design by Jean-Marc Nattier, plate 147 x 97 mm, dated 1724-1777 by the museum; Rijksmuseum, Amsterdam, object RP-P-1910-5050, titled by the museum as a portrait of Émilie du Châtelet. The museum's record marks the image Public Domain. It is a later print after another artist's design and not a documented sitting, so it is a historical depiction. The file is a crop of the plate from the museum's 4364 x 5884 scan of the print and its mount, downscaled to 912 x 1200 with no upscaling. · Public domain (Rijksmuseum Public Domain Mark; engraver Étienne Fessard died 1777)

물리학자 · 근세

에밀리 뒤 샤틀레

1706–1749

주요 업적 분야

과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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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그녀는 1740년대에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프랑스어로 옮기며 대수와 미적분을 풀어 쓴 자신의 해설을 덧붙였고, 1759년 사후에 출간된 이 번역은 지금도 프랑스어 번역의 표준으로 꼽힌다.

그녀는 1740년 《물리학 원리》에서 뉴턴 물리학에 라이프니츠적 형이상학의 토대를 붙였고, 이 교재는 프랑스에 라이프니츠 철학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녀는 1737년 과학 아카데미의 불의 본성 현상 공모에 응모했고, 불이 물질이라는 견해에 맞선 그 논문은 1744년 수상작들과 함께 아카데미에서 출간되었다.


삶의 장면들

1739년 브뤼셀 여행에서 그녀는 수많은 책과 대수를 가르칠 수학자 사무엘 쾨니히를 데려가, 여행 때문에 공부가 끊기지 않도록 했다.

이는 수학 공부를 이어가는 데 생활을 맞춘 학습자의 모습과 일치한다. 숙련 지향

그녀는 라이프니츠의 활력(비스 비바) 개념을 아카데미 서기 메랑에 맞서 옹호했고, 그와 주고받은 글을 《물리학 원리》 2판에 실었다.

이는 논쟁적인 입장을 원로 학자에 맞서 펼칠 의지가 있던 사상가의 모습과 일치한다. 독립적 사고


전환점

1740년대 중반 그녀는 자신의 물리학 교재를 쓰는 일에서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번역하고 해설하는 일로 옮겨갔고, 이 작업은 174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이는 자신의 종합을 내놓는 일에서 뉴턴의 수학을 프랑스어로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오랜 헌신으로의 전환과 일치한다. 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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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