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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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kya Pandita, thangka, Eastern Tibet, 18th century.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Rogers Fund, by exchange, 2006 (2006.285), Open Access · Sakya Pandita, thangka (distemper on cloth), Eastern Tibet, 18th century, accession 2006.285,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Rogers Fund, by exchange, 2006). A later devotional painting by an unknown artist, made about 500 years after his life, not a likeness. The file is a crop of the central seated lama from the museum's 1168 x 1676 image (the surrounding figures removed), 660 x 870, no upscaling. The painting carries no visible lettering; the museum's title identifies the sitter. · Public domain (Met Open Access: the museum's record marks the work as public domain; anonymous 18th-century painting)

학자 · 중세

사캬 판디타

1182–1251

주요 업적 분야

문화교육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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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적

사캬(1182~1251)의 다섯 대 법좌 보유자 가운데 네 번째로, 사캬를 인식론 연구의 중심으로 다시 세웠다. 『불교 백과사전』은 그를 사캬파 초기의 가장 위대한 학자로 꼽고 백 편이 넘는 저작이 전한다고 한다.

대표작 다섯 편은 지금도 티베트인들이 외우는 『격언 보배의 보고』, 『인식론의 보고』, 『삼률의 분명한 구분』, 『성자의 뜻을 밝힘』, 『학자에의 입문』이다.

카슈미르 학자 샤캬슈리바드라와 함께 다르마키르티의 『프라마나바르티카』를 티베트어로 다시 번역했고, 『학자에의 입문』에서 작문·해설·논쟁의 학습 과정을 제시했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는 이를 교육의 목적과 방법을 다룬 드문 중세 논서라고 평한다.


삶의 장면들

『삼률의 분명한 구분』에서 그는 동시대 티베트인들이 받아들인 열 가지 교리를 오류라고 꼽았고, 자신의 비판이 적의나 질투에서 나왔다는 비난에 맞서 경전과 논리로 변호했다.

이는 같은 편 안에서도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대가로 오랜 논란을 치렀던 태도와 일치한다. 갈등 감내

그의 것으로 전해지는 시구는 '나'라는 말을 여덟 번 써서 자신이 문법학자·논리학자·시인이며 안팎의 학문에 통달했다고 하고, 다른 이른바 학자들은 모방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의 학식을 거리낌 없이 내세우는 자신감 있는 태도와 일치하지만, 이 시구는 그의 작으로 전해지는 자기 서술이다. 사회적 적극성


전환점

카슈미르 학자 샤캬슈리바드라가 인도·네팔의 학승들과 함께 티베트에 오자, 그는 그를 찾아가 수가타슈리를 3년간 개인 교사로 두고 이어 샤캬슈리에게 5년을 더 배웠다. 스탠퍼드 철학 백과는 이를 삶의 큰 전환점으로 보며, 이후 그는 다르마키르티의 저작을 다시 번역하고 람데 전통으로 알려진 사캬를 인식론의 중심지로 바꾸었다.

이는 새로운 학문 체계를 익히기 위해 여러 해에 걸쳐 의도적으로 매진한 태도와 일치한다. 숙련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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