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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Javier Pedreira (Wicho), 2005, CC BY-SA 2.5 · Wikimedia Commons, 'Lynn Margulis.jpg' -- photograph by Javier Pedreira (Wicho) taken 9 November 2005 (EXIF-confirmed) at the III Congress on scientific communication in La Coruna, self-published by the photographer under CC BY-SA 2.5. Original 600 x 900 pixels (SHA-1 85400a7f matches the Commons record); saved unchanged, never upscaled. · CC BY-SA 2.5

생물학자 · 20세기

린 마굴리스

1938–2011

주요 업적 분야

과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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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마굴리스는 1967년 『이론생물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가 숙주 세포에 흡수된 세균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해, 1905년 콘스탄틴 메레시콥스키가 제안했던 공생설을 되살렸다. 크놀과 EBSCO는 이 논문이 게재되기 전 약 15개 학술지에서 거절당했다고 전하며, EBSCO는 그가 이 일로 '엄청난 적대'를 겪었다고 쓴다.

크놀은 그가 이 아이디어를 세포·분자 차원으로 다시 서술해 검증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후 연구가 두 세포 소기관 모두 막으로 싸여 있고 자체 DNA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고 쓴다. 엽록체 유전자는 자유 생활 시아노박테리아와, 미토콘드리아는 프로테오박테리아 안쪽 계통과 묶인다. 크놀은 이를 20세기 과학의 큰 진전으로 꼽는다. 그는 1983년 미국 국립과학원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99년 국가과학메달을 받았다.

마굴리스는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가설을 지지하고 이를 협력에 기반한 대안 생물학과 엮어, 공생이 새로운 종의 기원을 이끈다고 주장했다. 크놀은 대다수 생물학자가 이제 협력의 더 큰 역할을 인정하지만 공생이 종분화를 이끈다는 데 동의하는 이는 드물고, 편모가 공생 세균에서 유래했다는 그의 주장은 강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고 쓴다. 『타임스 하이어 에듀케이션』은 리처드 도킨스가 공개적으로 적대적이었고 대부분의 과학자가 가이아를 불필요하다고 보았다고 전한다.


삶의 장면들

마굴리스의 1967년 공생 기원 논문은 『이론생물학 저널』에 실리기 전 약 15개 학술지에서 거절당했고, EBSCO에 따르면 그는 과학계의 적대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을 발표하고 옹호하기 위해 널리 다녔다.

거절당한 아이디어를 여러 해 동안 꾸준히 살려 낸 노력과 일치한다. 끈기

크놀은 마굴리스가 협력과 공생을 중심으로 한 대안 생물학을 세우며 진화론의 기본 전제 일부를 거부했고, 편모가 공생 세균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은 강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고 쓴다. 그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이 논란적이라기보다 옳다고 말했다고 한다.

분야 대부분에 맞서 진화에 대한 자기 관점을 고수한 태도, 그리고 엇갈린 결과와 일치한다. 독립적 사고


전환점

1967년 논문 뒤 마굴리스는 1970년 『진핵세포의 기원』과 1981년 『세포 진화에서의 공생』을 냈고, 크놀의 설명에 따르면 이후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 서열이 이 소기관들을 세균 계통 안에 자리매김했다. 이 아이디어는 거절당한 제안에서 『네이처』의 표현대로 복잡한 세포 진화의 결정적 단계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이 되었다.

검증 가능한 증거가 쌓이면서 아이디어가 거절에서 수용으로 옮겨 간 흐름과 일치한다. 창의적 독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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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