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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stone View Company, stereograph 'Lou Gehrig, famous Yankee first baseman', c1930, Library of Congre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 Keystone View Company, 'Lou Gehrig, famous Yankee first baseman', stereograph No. 32597 (Meadville, Pa., c1930), Library of Congre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STEREO BIOG FILE - Gehrig, Lou; digital file LC-DIG-ppmsca-18599; left-hand view cropped to the player only · Public domain (published in the United States c1930; copyright registered JO 6667, no renewal found by the Library of Congress, checked 9/2016; US publication before 1931)

운동선수 · 20세기

루 게릭

1903–1941

주요 업적 분야

스포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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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게릭은 1925년 6월부터 1939년 5월까지 뉴욕 양키스에서 2,130경기 연속 출장했다. 1925년 6월 1일 대타로 나선 것이 시작이었고, 이튿날 처음으로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미국야구명예의 전당은 이 기록이 칼 립켄 주니어가 1995년에 넘어설 때까지 깨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고 소개하며, 이 연속 출장 때문에 그에게 ‘아이언 호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1927년 게릭은 뉴욕 언론이 ‘머더러스 로’라고 부른 양키스 타선에서 4번 타자로 나섰다. 그는 타율 0.373, 홈런 47개, 리그 1위인 타점 173개와 구단 신기록인 2루타 52개를 기록해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혔고, 양키스는 그해 월드시리즈를 4연승으로 끝냈다. 그해 60홈런의 신기록을 세운 베이브 루스와 함께 그는 10년 가까이 타선의 중심을 이루었다.

게릭은 통산 타율 0.340, 홈런 493개, 타점 약 1,995개를 남겼고, 미국야구명예의 전당에 따르면 그가 뛴 17시즌 동안 양키스는 월드시리즈에서 여섯 번 우승했다. 1934년에는 아메리칸리그 타율(0.363), 홈런(49개), 타점(165개) 1위를 모두 차지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고, 1936년에는 두 번째 MVP를 받았다.

1939년 7월 4일 양키 스타디움에는 ‘루 게릭 감사의 날’을 맞아 6만 1,808명의 관중이 모였고, 게릭은 ‘오늘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고별 연설을 했다. 같은 해 12월 7일 전미야구기자협회는 만장일치로 대기 기간을 면제해 그를 즉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기로 의결했는데, MLB.com은 이를 협회가 특별 선거로 선수를 뽑은 단 두 번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삶의 장면들

1930 시즌 마지막 3주 동안 게릭은 손가락이 부러진 채 뛰었고, 시즌이 끝난 뒤에야 수술을 받았다. 입원 중에는 왼쪽 팔꿈치에서 뼛조각이 발견되어 두 번째 수술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해 양키스의 모든 경기에 출장했고 타율 0.379, 홈런 41개, 리그 1위인 타점 174개로 시즌을 마쳤다.

손가락이 부러진 채 쉬지 않고 시즌을 끝까지 치른 것은 끈기와 일치한다. 다만 오랜 기간 가운데 한 시즌의 사례이며, 선수 생활 중 손가락이 모두 부러졌다는 말은 2차 자료의 집계다. 끈기

1927년 가을 루스와 함께 전국 순회 경기를 마친 뒤, 게릭은 루스가 3만 달러를 요구하라고 권했음에도 양키스가 보낸 평소 계약서에 한동안 서명하지 않았다. 몇 주 뒤 그는 구단주 제이컵 루퍼트의 양조장을 찾아가 연봉 2만 5천 달러에 3년 계약을 맺었다. 이는 그에게 큰 인상이었지만 루스의 연봉에는 한참 못 미쳤고, 그에게는 금액보다 계약 기간이 더 중요했다.

서명을 미루다가 루스가 제시한 더 큰 금액 대신 안정을 택해 빠르게 합의한 것은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조용한 협상 방식과 일치한다. 전기는 그가 안정을 우선했다고 전하지만, 계약 한 건은 표본이 작다. 사회적 적극성


전환점

1925년 6월 2일, 7위에 머물던 양키스의 밀러 허긴스 감독은 오랫동안 주전이던 월리 핍 대신 게릭을 1루수로 선발 출장시켰다. 대타로 나서던 후보 선수였던 게릭은 5타수 3안타를 쳤고, 허긴스는 다음 경기 전에 그에게 ‘오늘부터 계속’ 1루수라고 말했다. SABR 전기는 핍이 두통으로 쉬었다는 흔한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는데, 핍은 타율 0.244였고 팀 성적도 부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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