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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Sharples, Joseph Priestley, 1797, pastel on paper, National Portrait Gallery, Smithsonian Institution, NPG.77.160 (CC0) · Wikimedia Commons, 'Joseph Priestley by James Sharples, 1797, pastel on paper, from the National Portrait Gallery - NPG-NPG 77 160.jpg' -- pastel on paper by James Sharples (c. 1751-1811), 1797, drawn from life in America, National Portrait Gallery, Smithsonian Institution (NPG.77.160); the museum's digital image is released under CC0 (Smithsonian Open Access). Original Commons file 5563 x 6385 pixels includes the museum frame and mat; cropped to the pastel itself (2710 x 3420 pixels) and downscaled once to 951 x 1200 (never upscaled). · CC0 1.0 (Smithsonian Open Access); work in the public domain

화학자 · 근세

조지프 프리스틀리

1733–1804

주요 업적 분야

과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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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전기의 역사와 현황》(1767)은 이 분야를 정리하고 자신의 실험을 더한 책으로, 그는 이 책으로 왕립학회 회원에 선출되었다.

그는 새로운 기체를 여덟 가지 이상 찾아냈고 탄산수를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으며, 여섯 권짜리 《여러 종류의 공기에 관한 실험과 관찰》(1774~1786)에 수백 건의 실험을 정리했다.

1774년 그는 오늘날 산소라 부르는 기체를 분리해 '탈플로지스톤 공기'라 이름 붙였고, 이를 라부아지에에게 보여 주었으며 라부아지에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화학을 세웠다.


삶의 장면들

가열한 산화수은에서 얻은 새 공기 속에서 촛불이 힘차게 타는 것을 본 그는 쥐를 넣어 보았고 이어 직접 들이마셔 본 뒤, 지금까지 그 공기를 마신 것은 쥐 두 마리와 자신뿐이라고 적었다.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면 시험할 수 있는 모든 것, 자기 자신까지 동원해 추가로 시험해 보는 연구자의 태도와 일치한다. 호기심

과학계가 플로지스톤 이론을 이미 버린 1797년에도 그는 《플로지스톤 이론의 확립》을 펴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견해를 지켰다.

당대의 증거가 쌓여 가는데도 자신의 틀을 지킨 태도와 일치하며, 역사가들은 이를 끈질김이자 대가가 큰 선택으로 읽는다. 입장 수정 성향


전환점

헥사곤 논문에 따르면 1789년 라부아지에의 《화학원론》이 나온 뒤 프리스틀리의 과학 활동은 새로운 발견보다 플로지스톤을 지키는 후위전 쪽으로 옮겨 갔다.

학계의 흐름이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새로운 현상을 탐구하던 데서 기존 입장을 방어하는 쪽으로 활동이 바뀐 연구자라는 점과 일치한다. 입장 수정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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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