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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Snow, photograph of 1856 by an unrecorded photographer, reproduced as an autotype in The Asclepiad, vol. IV (1887); scan: Internet Archive / University of Toronto; cropped to the photograph and downscaled · Autotype plate facing p. 274 in B. W. Richardson (ed.), The Asclepiad, vol. IV (London: Longmans, Green, 1887), captioned 'Autotype from a Presentation Portrait, 1856, and Autograph facsimile.—B. W. R.'; University of Toronto (Gerstein) copy digitized by the Internet Archive · Public domain

의사 · 19세기

존 스노

1813–1858

주요 업적 분야

의학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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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1849년 그는 콜레라가 나쁜 공기가 아니라 앞선 환자에게서 나온 물질을 삼키면서, 대개 오염된 물을 통해 퍼진다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했다. 1855년에 크게 보강한 개정판에는 런던 시내의 하수로 오염된 템스강 물을 끌어 쓰는 회사와 더 상류의 물을 쓰는 회사, 두 남런던 상수도 회사 고객들의 콜레라 사망을 집집마다 비교한 조사가 더해졌다.

1854년 소호의 브로드가 콜레라 발생에 대한 그의 조사는 동네 공용 펌프를 지목했다. 그와 부목사 헨리 화이트헤드가 참여한 교구 위원회는 1855년 이 발생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 우물물과 관련이 있다고 결론지었지만, 같은 해 중앙보건위원회의 과학조사위원회는 그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847년부터 흡입기를 고안하고 에테르와 이어 클로로포름에 관한 실용적인 연구를 발표해, 런던에서 가장 많이 찾는 마취의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자신이 시행한 모든 마취를 사례 기록으로 남겼으며, 1853년과 1857년 빅토리아 여왕의 두 차례 출산 때 클로로포름을 투여했다.


삶의 장면들

브로드가 콜레라가 발생한 지 일주일쯤 지난 1854년 9월 7일 저녁, 스노는 교구 구빈위원회에 발언 기회를 청해 펌프를 가리키는 자신의 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이튿날 펌프 손잡이가 제거되었다. 그러나 그 자신의 수치와 뒤에 부목사 헨리 화이트헤드가 낸 수치 모두, 새 환자가 이미 그 전부터 줄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공식 직책도 없이, 그의 이론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던 때에 자신이 모은 증거를 들고 지역 당국을 찾아간 일은 먼저 나서서 행동하는 성향을 높게 본 이 프로필의 해석과 맞닿아 있다. 선제적 행동력

1855년 3월 스노는 제조업자들을 대신해 의회 위원회에 나가, 뼈 삶는 일 같은 업종에서 나오는 악취 자체가 유행병을 일으키지는 않는다고 증언했다. 적대적인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그런 업종을 특별히 연구한 적은 없다고 인정했다. 『랜싯』은 두 차례의 신랄한 사설로 응수했고, 그중 하나는 그의 증언을 과학이 아닌 '외골수의 독단'이라며 깎아내렸다.

여론이 반기지 않는 편에 서서 압박 속에서도 입장을 지킨 이 일은 논쟁을 피하지 않는 그의 태도를 보여 주는 한 예다. 동시에, 그가 때로 증거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논증을 더 밀어붙였다는 친구 리처드슨의 평가와도 나란히 놓인다. 갈등 감내


전환점

1846년 12월 에테르 마취 소식이 런던에 전해졌지만 초기 결과는 들쭉날쭉했다. 친구 B. W. 리처드슨에 따르면, 스노는 문제가 증기를 투여하는 방식에 있다고 보고 개선된 흡입기를 만들어 동물 실험을 거친 뒤 런던의 병원들에서 마취를 맡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과의들이 그를 꾸준히 찾으면서, 그는 어렵던 일반 개업의 생활에서 벗어났다.

새로운 기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직접 실험하고 기구를 만들어 대응한 일은, 이후 다른 마취제 연구에서도 이어지는 그의 손수 해 보는 실험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실험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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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