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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iel Dance-Holland, Captain James Cook, 1776, National Maritime Museum, Greenwich (public domain; author died 1811) · National Maritime Museum, Greenwich, London (Greenwich Hospital Collection, BHC2628), via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탐험가 · 근세

제임스 쿡

1728–1779

주요 업적 분야

역사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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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쿡은 1763년부터 1767년까지 뉴펀들랜드 해안과 인접한 래브라도 해안을 측량했으며, 이 기간 대부분 스쿠너선 그렌빌호를 이용했다. 2018년의 한 학술 논문은 이 측량의 수준을 부정하는 사람이 없고, 부분적으로나마 대체된 것은 1830년대에 이르러서였다고 지적한다.

쿡 자신의 보고에 따르면 1768~71년 인데버호 항해에서는 위험한 괴혈병 사례가 한 건도 없었고, 1772~75년 레절루션호 항해에서는 네 명만을 잃었으며 그중 괴혈병으로 숨진 사람은 없었다. 코디체크와 영은 후자를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결과로 평가하면서도, 인데버호 승무원 31명이 이후 바타비아에서 걸린 이질과 말라리아로 사망했다고 함께 언급한다.


삶의 장면들

1770년 6월 10~11일 밤(두 일지의 날짜는 하루 차이가 난다), 인데버호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 앞바다에서 산호초에 좌초했다. 뱅크스의 일지와 쿡 본인의 기록은 모두 승무원들이 대포와 밸러스트, 물자를 바다에 버리고 닻을 내려 배를 끌어냈으며, 이후 삼실과 양모를 채운 돛천으로 누수 부위를 덮었다고 서술한다. 뱅크스에 따르면 이 방법은 사관 후보생 한 명이 제안한 것이다. 이후 배는 수리할 수 있는 강 하구로 옮겨졌다.

하급 장교의 제안을 받아들여 수리를 마무리한 이 일련의 과정은, 미리 정해 둔 계획보다 손에 있는 재료와 아이디어로 즉흥적으로 대응했다는 이 프로필의 자원 활용 능력 해석과 부합한다. 자원 활용 성향

1774년 1월 30일 남위 71도 10분에서 레절루션호는 끝없이 이어진 얼음벌판과 마주쳤다. 포르스터는 더 나아갈 수 없어 배를 돌렸다고 기록했고, 쿡은 계속 나아가는 것이 '위험하고 무모한 시도'였을 것이라고 썼다. 또한 인간이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려는 야망을 지닌 자신이 이 장애를 아쉬워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위험한 항로를 감수하면서도 쿡 스스로 무모하다고 판단한 지점에서는 멈춘 위험 감수 성향의 한 사례를 보여 준다. 다만 이것만으로 그가 다른 상황에서 위험을 어떻게 저울질했는지까지 단정할 수는 없다. 위험 감수


전환점

1755년, 북해 석탄 무역과 발트해 무역에서 거의 10년을 보낸 쿡은 상선 선장 자리를 제안받았다는 기록이 있음에도 일반 수병으로 영국 해군에 자원했다. 그는 한 달 만에 항해장 조수가 되었고 1757년에는 항해장 자격을 얻었으며, 1758년 루이부르에서 육군 기술장교 새뮤얼 홀랜드에게 평판 측량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 가지 해석은, 그가 안정적인 상선 선장 자리 대신 승진 경로가 열려 있는 조직에서 더 낮은 직급을 택했다는 것이며, 이는 이 프로필의 성취 동기 항목과 부합한다. 다만 이번에 확인한 자료에는 그 자신의 이유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성취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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