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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Albertin, New York World-Telegram and Sun staff photographer, 1965; Library of Congre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New York World-Telegram and Sun Newspaper Photograph Collection · Wikimedia Commons, from the Library of Congress New York World-Telegram and Sun Collection (resized derivative of the original photograph) · No known copyright restrictions (Library of Congress staff-photographer collection; reproduction rights transferred to the Library of Congress by Instrument of Gift)

영화감독 · 20세기

페데리코 펠리니

1920–1993

주요 업적 분야

예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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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펠리니는 『라 스트라다』(1954)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카비리아의 밤』(1957)으로 다시 같은 상을 받았다. 앞의 영화에서는 아내 줄리에타 마시나가 앤서니 퀸이 연기한 떠돌이 차력사 곁의 소녀 젤소미나를 맡았고, 뒤의 영화에서는 마시나가 낙천적인 로마의 매춘부로 나온다. 샤나한(Shanahan)은 좌파 비평가들이 두 작품 모두 네오리얼리즘의 사회 비판 노선을 떠났다며 공격했다고 전한다.

『달콤한 인생』(1960)은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연기한 로마의 가십 기자가 유명인과 스캔들로 얼룩진 도시의 밤을 헤매는 이야기이며, 사진기자 파파라초라는 인물을 통해 영어에 '파파라치'라는 말을 남겼다. 딕슨(Dixon)은 가톨릭 교회의 비난에도 이 영화가 곧바로 흥행과 평단 양쪽에서 화제작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보즐리 크라우더는 1961년 뉴욕 타임스 평에서 펠리니가 최근의 영화인 가운데 정신없는 현대 문명의 포괄적 모습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다고 평했다.

『8과 1/2』(1963)에서 마스트로이안니는 자신이 만들어야 할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감독을 연기하며, 꿈과 기억과 환상이 제작 현장의 일상과 뒤섞인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과 흑백 의상상을 받았고, 딕슨은 이 작품이 국제 비평가 투표에서 역대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자주 꼽힌다고 쓴다.

파시즘 시대 리미니를 기억과 지어낸 이야기로 엮어 낸 『아마르코르드』(1973)로 펠리니는 1975년 시상식에서 네 번째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펠리니는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모두 지어냈다고 말했으며, 잭슨(Jackson)은 영화 속 바다와 대형 여객선이 일부러 인공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삶의 장면들

펠리니는 『달콤한 인생』을 찍으면서 실제 비아 베네토에서 촬영하는 부담에 시달리자, 미술감독 피에로 게라르디에게 치네치타에 그 거리를 그대로 지어 달라고 했다. 30년 뒤 그는 카페 드 파리 앞을 지날 때마다 진짜 비아 베네토는 5번 스튜디오에 있던 거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썼고, 스튜디오의 거리가 더 정확하거나 적어도 더 매력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인터비스타』(1987)에서도 그는 스튜디오 축소 모형을 만들어 가로수 길의 방향을 바꾸고 지붕 색을 다르게 칠했다.

실제 거리보다 지어 놓은 거리를, 항공 촬영보다 스튜디오 모형을 택한 점은 미적 감수성과 부합한다. 인용된 말은 펠리니가 나중에 회고한 것이며 잡지 기고자를 통해 전해진다. 미적 감각

『달콤한 인생』의 첫 제작자 디노 데 라우렌티스가 주연으로 폴 뉴먼을 원하자, 딕슨에 따르면 펠리니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를 포기하지 않았고, 힘든 협상 끝에 데 라우렌티스는 제작에서 물러났다. 그 뒤 펠리니는 한동안 제작자 세 곳과 동시에 얽혔다가, 안젤로 리촐리와 주세페 아마토의 회사와 1958년 10월 28일 계약을 맺었다.

첫 제작자를 잃는 대가를 치르면서도 자신의 캐스팅을 고수한 것은 작품의 핵심 결정을 직접 통제하려는 욕구와 부합한다. 다른 제작자들의 입장에 대한 딕슨의 서술은 짧다. 자율성 욕구


전환점

펠리니는 1961~62년에 온천 휴양지를 배경으로 주연 배우들을 정해 두고 『8과 1/2』을 준비했지만, 친구 안젤로 솔미에게 말했듯이 줄거리를 알지 못했고, 제작자에게 더는 못 하겠다고 말하려던 순간이 쉰 번이나 있었다고 했다. 딕슨은 영화를 풀리게 한 결정적 변화가 주인공을 자신과 같은 영화감독, 곧 기억나지 않는 영화를 시작해야 하는 지친 남자로 바꾼 것이었다고 쓴다. 그 결과물은 아카데미상 두 부문을 받았다.

이야기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세트와 캐스팅을 진행하고, 그 문제 자체를 영화의 주제로 삼은 일은 높은 모호성 내성과 부합한다. 이 서술은 솔미를 통해 전해지는 펠리니 본인의 훗날 설명에 기대고 있다. 모호함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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