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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y Dickinson, daguerreotype, c. 1846-47; original in Amherst College Archives & Special Collections (credit requested by the holder); cropped and downscaled · Daguerreotype of Emily Dickinson, unknown photographer, probably Amherst, Mass., between 10 Dec. 1846 and late March 1847 (Amherst College Archives & Special Collections, Emily Dickinson Collection; Millicent Todd Bingham gift, 1956) -- Amherst College's own 720 dpi colour scan of the cased daguerreotype ('ED-dag-case-720dpi'), uploaded to Wikimedia Commons as File:ED-dag-cropped-720dpi.tif (original 4788 x 2797 px TIFF); cropped to the plate and gold mat (case lid and velvet removed) and downscaled to 1600 px long edge · Public domain

시인 · 19세기

에밀리 디킨슨

1830–1886

주요 업적 분야

문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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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디킨슨은 1,800편에 가까운 시를 썼다. 그의 원고는 제목이 없고 대략적인 시간 순서로만 번호가 매겨져 있었으며, 대시가 곳곳에 쓰이고 대문자 표기가 불규칙했으며 언어가 몹시 압축된 경우가 많았다. 그는 완전 압운을 자주 썼지만 근접 압운(slant rhyme)도 자주 활용했다.

1858년 무렵부터 1864년 사이에 디킨슨은 800편이 넘는 시를 직접 만든 작은 책자 마흔 권에 옮겨 적었다. 종이를 접어 겹친 뒤 끈으로 묶은 이 책자들은 오늘날 '파시클'이라 불리며, 1886년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여동생이 발견했다. 그녀의 손으로 쓴 시 원고는 모두 약 2,500점이 남아 있다.

생전에 인쇄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은 시 열 편과 편지 한 통뿐이며, 시는 모두 이름 없이 실렸으며, 학자들은 이 가운데 대부분 또는 전부가 그녀의 허락 없이 인쇄되었다고 본다. 첫 시집 『시집』(1890)은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과 메이블 루미스 토드가 엮었는데, 두 사람은 구두점을 일반적인 방식으로 고치고 일부 낱말을 바꾸었다. 원고에 바탕을 둔 판본은 이후 1955년 토머스 H. 존슨, 1998년 R. W. 프랭클린에 의해 나왔다.


삶의 장면들

1861년 여름 디킨슨은 올케 수전 디킨슨에게 시 「설화석고 방 안에 안전히」를 보낸 뒤, 둘째 연을 완전히 새로 쓴 판본을 다시 보냈다. 수전이 새 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답장하자 디킨슨은 '이게 더 서늘한가요?'라고 물으며 세 번째 판본을 보냈다. 이 쪽지와 원고는 하버드 대학에 남아 있으며 1958년 학술판 서간집에 실려 있다.

독자의 비판에 첫 판본을 변호하기보다 새로운 대안으로 답한 것은 이 프로필의 실험 성향 점수와 부합한다. 그녀의 후기 원고에는 고를 수 있는 낱말 여러 개가 나란히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실험 성향

1862년 6월 히긴슨이 출판을 미루라고 권하자, 그녀는 출판은 '내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고 답했다. 1876년 작가 헬렌 헌트 잭슨이 익명 시 총서에 작품을 내라고 거듭 청하자, 디킨슨은 잭슨이 거절을 받아들이도록 반대 의견을 적은 쪽지를 써 달라고 히긴슨에게 부탁했다. 1884년에도 잭슨은 시를 '세상에 내놓으라'고 그녀를 설득하고 있었다.

거듭된 요청에도 자신의 시를 인쇄할지 말지를 스스로 정한 것은 이 프로필의 높은 자율성 욕구 점수와 나란히 놓인다. 그녀가 출판을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여전히 의견이 갈리므로, 이 해석은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를 말할 뿐 그 이유를 단정하지 않는다. 자율성 욕구


전환점

1862년 4월 디킨슨은 『애틀랜틱 먼슬리』에 실린 젊은 작가들을 위한 히긴슨의 조언을 읽고, 일면식도 없던 그에게 자신의 시가 '살아 있는지' 묻는 편지를 시 네 편과 함께 보냈다. 히긴슨은 잡지 편집자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에서 그 주에 받은 시들을 '다행히 출판용으로 넘길 것은 아니다'라고 적었다. 1891년의 회고에서 그는 그녀를 규칙과 전통 쪽으로 이끌어 보려 했지만, 그녀는 각운을 맞추려고 어순을 바꾸지 않았고 자신은 곧 지도하려는 시도를 그만두었다고 썼다.

이름난 비평가를 스스로 찾아가고도 자신의 형식을 지킨 것은 이 프로필의 독립적 사고를 보여 주는 한 사례다. 히긴슨의 회고는 수십 년 뒤 그녀를 높이 평가한 공동 편집자가 쓴 것이어서, 해당 점수를 최상위 구간 아래로 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독립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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