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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ar Degas, Self-Portrait, c. 1855, red chalk on laid paper,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Woodner Collection (1991.182.23); NGA Open Access, CC0 ·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Woodner Collection 1991.182.23 (NGA open access), via Wikimedia Commons 'Edgar Degas, Self-Portrait, c. 1855, NGA 73867.jpg' · Public domain (CC0; artist died 1917)

화가 · 19세기

에드가 드가

1834–1917

주요 업적 분야

예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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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드가는 발레를 작품의 중심 주제로 삼아 연습 중인 무용수, 무대 옆, 오페라 극장 휴게실의 무용수를 유화와 파스텔, 소묘로 그렸다. 성악가 장바티스트 포르(Jean-Baptiste Faure)가 주문한 『무용 수업』은 1874년 5,000프랑에 인도되었다. 드가는 훗날 앙브루아즈 볼라르(Ambroise Vollard)에게, 사람들은 자신을 무용수를 그리는 화가라고 부르지만 무용수에 대한 자신의 주된 관심은 움직임을 표현하고 아름다운 의상을 그리는 데 있다고 말했다.

드가는 마리 판 호트험(Marie van Goethem)을 모델로 색을 입힌 밀랍으로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를 만들고, 실제 보디스와 튀튀, 스타킹, 발레 슈즈, 리본을 단 가발을 입혔다. 이 작품은 1880년 그룹전에 출품이 예고되었으나 1881년 4월에야 공개되었으며, 드가가 생전에 전시한 유일한 조각이다. 평은 엇갈렸다. 위스망스(Huysmans)는 자신이 아는 조각 분야의 유일하게 진정으로 현대적인 시도라고 평했고, 다른 평자들은 소녀의 표정을 공격했다. 청동 주조는 1921년에야 이루어졌다.

1873년 12월 드가는 모네, 피사로, 시슬레, 모리조, 세잔 등과 함께 심사 없는 전시를 위한 협동조합 회사를 만들었고, 그 첫 전시는 1874년 4월 15일 열려 그의 작품 열 점이 나왔다. 그는 1874년부터 마지막 전시인 1886년까지 이 그룹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마지막 전시에는 목욕하는 여인들을 그린 파스텔 연작을 냈다. 그는 '인상주의자'라 불리는 것을 못마땅해했으며, 르무안(Lemoisne)은 그가 이 그룹의 야외 제작 방식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쓴다.

드가는 발레 외에도 경마장, 세탁부와 다림질하는 여인들, 카페 콩세르의 가수 등 근대 파리의 장면을 그렸다. 포르는 1873~74년에 그의 경마 장면 네 점을 샀다. 『카페에서(압생트를 마시는 사람)』는 1876년 화상 샤를 데샹(Charles Deschamps)을 통해 런던에서 팔렸다. 1886년에 선보인 목욕하고 몸을 닦고 머리를 빗는 여인들의 파스텔은 화장하는 여인들의 누드 연작으로 전시 도록에 기재되었다.


삶의 장면들

1876년 드가는 비평가 쥘 클라레티(Jules Claretie)에게 새로운 판화 기법을 찾아냈다고 말했고, 판화가 마르슬랭 데부탱(Marcellin Desboutin)은 그가 자신의 소묘를 복제할 방법을 찾느라 금속공, 납 주조공, 석판공 이야기만 한다고 썼다. 1880년 그는 제5회 그룹전에 낸 에칭을 '실험과 판의 단계'라는 이름으로 소개했으며, 그중 하나인 「욕조에서 나오는 여인」은 스물두 단계를 거쳤다.

산업용 인쇄 기술자들을 찾아다니고, 판의 미완성 단계를 전시의 일부로 내놓은 일은 실험을 즐기는 강한 성향과 부합한다. 보그스(Boggs) 도록은 이런 탐구가 금전적 이득에 대한 생각을 밀어냈다고 지적한다. 실험 성향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드가가 스무 번째로 다시 만든 작은 밀랍 무용수상을 보여 주며 하루 이틀이면 주조업자에게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다음 날 남은 것은 처음의 밀랍 덩어리뿐이었고, 드가는 그것을 부수고 다시 시작하는 즐거움을 금 한 양동이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거의 완성된 작품을 부수고 다시 시작한 일은 완벽주의와 부합한다. 이 일화는 단일 출처이지만, 볼라르는 드가가 그림 속 인물 하나를 지워 버리고 틀을 바꾼 그림을 도로 가져갔다고도 전하며, 보그스 도록은 「어린 무용수」가 거듭 늦어졌음을 기록한다. 완벽주의


전환점

1873년 4월 드가는 화가 제임스 티소(James Tissot)에게 살롱 출품 계획을 접었다고 썼다. 그해 12월 그는 협동조합 회사에 참여했고, 1874년 3월에는 '사실주의자들의 살롱이 있어야 한다'며 이 일을 '힘차게 이끌고 있다'고 썼다. 협회의 첫 전시는 1874년 4월 15일 열렸으나 적자를 냈고 협회는 5월에 해산되었다. 그러나 드가는 이후 이 그룹의 전시에 계속 참여했다.

공식 살롱에서 벗어나 자신이 조직에 참여한 무심사 전시로 옮겨 간 일은 자기 작품이 평가되고 전시되는 방식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강한 욕구와 부합한다. 르무안은 그가 제2제정기에는 살롱에 출품했다고 적는다. 자율성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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