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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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hew Brady studio, Cornelius Vanderbilt, head-and-shoulders portrait, half-plate daguerreotype, between 1844 and 1860, Library of Congress Daguerreotype collection (DAG no. 058); public domain, no known restrictions on publication; scratches removed and histogram adjusted by Michel Vuijlsteke on Commons; downscaled · Library of Congre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Daguerreotype collection (DAG no. 058; LC-USZC4-4160, digital ID cph.3a11569), via Wikimedia Commons (restored scan) · Public domain

사업가 · 19세기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1794–1877

주요 업적 분야

창업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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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밴더빌트는 기번스 노선에서 10년 넘게 증기선 선장으로 일한 뒤 1829년 독립해, 허드슨강과 롱아일랜드 해협에서 기존 노선과 경쟁하는 증기선 노선을 운영했다. 더 빠른 배와 더 낮은 운임으로 기존 회사들을 타협하게 만들었다. 1851년에는 니카라과를 거쳐 캘리포니아로 가는 증기선·육로 노선을 열어, 퍼시픽 메일 증기선 회사의 파나마 노선과 경쟁했다.

밴더빌트는 1863년부터 할렘 철도와 허드슨강 철도를, 1867년부터는 뉴욕 센트럴 철도를 장악했고, 1869년 뉴욕 센트럴을 허드슨강 철도와 합병했다. 이후 레이크쇼어 철도까지 맡아, 그의 철도망은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이어지는 직통 노선을 갖추게 되었다. 그의 철도는 복선화되고 강철 레일이 깔렸지만, 찰스 프랜시스 애덤스 2세 같은 동시대인들은 주식 자본을 크게 부풀린 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삶의 장면들

1862년 3월 15일, 남부 연합의 철갑선 메리맥호가 햄프턴 로즈에서 북군 함선들을 공격한 뒤, 전쟁부는 밴더빌트에게 전보를 보내 이 배를 격침하거나 묶어 두는 데 얼마를 받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값을 부르는 대신 워싱턴으로 갔고, 닷새 만에 정부는 그의 가장 큰 증기선 밴더빌트호를 기증품으로 받아 그의 지휘 아래 두었으며, 배는 출항 준비를 마쳤다. 이 전보와 명령서들은 해군 공식 기록에 남아 있다.

값을 묻는 요청에 자기 배를 내놓는 것으로 답한 일은 이 프로필의 선제적 행동력 점수와 부합한다. 역사가 T. J. 스타일스는 해군이 앞서 같은 배의 기증 제안을 거절한 적이 있다고 전한다. 선제적 행동력

1850~51년 무렵 니카라과 노선을 열기 위해 밴더빌트는 직접 작은 증기선을 몰고 산후안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1877년 『뉴욕 트리뷴』의 부고에 따르면, 배는 상류 쪽 나무에 묶은 밧줄로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카스티요 급류를 넘었다. 전기 작가 T. J. 스타일스도 그가 직접 배를 몰아 급류를 통과했다고 서술하지만, 후대의 더 극적인 이야기들은 신뢰도가 낮다.

급류를 직접 헤쳐 나간 일은 이 프로필의 위험 감수 점수와 나란히 놓이지만, 그 위험은 가진 것을 모두 건 도박이라기보다 자금이 충분한 사업의 일부였다. 위험 감수


전환점

1818년, 뉴욕항에서 자기 범선들을 운영하던 밴더빌트는 적은 급여를 받고 토머스 기번스의 뉴욕-뉴브런즈윅 노선 소형 증기선의 선장을 맡았다. 훗날 그 자신은 이를 범선과의 결단적인 결별로 이야기했지만, 스타일스는 기번스의 선장이 갑자기 떠나자 그가 처음에는 임시로 고용되었고 이후에도 여러 해 동안 범선 사업을 계속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번스 밑에서 보낸 시절은 그에게 증기 항해의 훈련장이 되었다.

일찍 증기선으로 옮겨 간 일은 이 프로필의 기회 감지 점수를 보여 주는 한 예가 되지만, 그 시점에는 선견지명만큼이나 우연도 작용했다. 기회 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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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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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