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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Lee from London, UK, 'Ayrton Senna in the paddock before the 1993 British Grand Prix', CC BY-SA 2.0 (resized from the original) · Martin Lee (Flickr, user kartingnord), via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운동선수 · 20세기

아일톤 세나

1960–1994

주요 업적 분야

스포츠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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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세나는 1983년 웨스트 서리 레이싱 소속으로 영국 포뮬러 3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시즌 첫 아홉 경기를 모두 이겼고, 최종전을 앞두고는 마틴 브런들에게 포인트에서 뒤졌으나 스럭스턴 최종전에서 우승하며 타이틀을 차지했다.

1984년 톨먼 소속으로 치른 첫 포뮬러 1 시즌에서 세나는 폭우 속에 열린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2위를 기록했다. 이 경기는 그가 선두 알랭 프로스트를 추격하던 중 일찍 중단되었다. 그는 영국 그랑프리에서, 그리고 팀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포디엄에 올랐다.


삶의 장면들

1984년 8월 말, 로터스가 1985년 시즌 세나 영입을 발표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언론에 새어 나갔고, 톨먼 팀 대표 알렉스 호크리지는 세나가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계약했다는 사실을 그 보도로 알게 되었다. 톨먼은 세나에게 이탈리아 그랑프리(몬차)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고, 엔지니어 팻 시먼즈는 이후 세나가 다음 경기 무렵에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음을 이해한 것 같았으며 그 뒤로 관계가 한결 정중해졌다고 회고했다.

이 일화는 자신이 선택한 이적을 추진하면서 소속 팀과의 공개적인 마찰을 감수했음을 보여 주며, 갈등 감수성 점수와 부합한다. 갈등 감내

1992~93년 겨울 세나는 맥라렌의 초기 테스트에 나타나지 않았고, 12월에는 파이어버드 레이스웨이에서 펜스케 인디카를 시험 주행했으며, 새 MP4/8을 직접 몰아 보기 전에는 1993년 시즌 출전을 확정하지 않았다. 1993년 3월 초 실버스톤에서 약 20분간 첫 주행을 마친 뒤 엔지니어 조르조 아스카넬리는 두 시간에 걸친 디브리핑이 이어졌다고 회고하며, 세나는 이후 밤에 전화를 걸어 출전하겠다고 알렸다. 그러나 그는 경기별 계약만 받아들였고, 남은 시즌 계약서에 서명한 것은 7월 프랑스 그랑프리 무렵이었다.

차량을 직접 시험해 본 뒤에야 결정하고 계약을 경기 단위로 열어 둔 점은, 자신이 달리는 조건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강한 욕구와 부합한다. 자율성 욕구


전환점

1981년 말 세나는 시즌 마지막 포뮬러 포드 페스티벌에 출전하지 않고 브라질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밴 디먼의 랠프 퍼먼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유럽으로 돌아오겠다고 알렸고, 1982년에는 데니스 러션의 팀에서 포뮬러 포드 2000에 출전해 그해 유럽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 전화는 주도적 행동력 점수의 근거가 되는 여러 자발적 행보 가운데 하나이다. 선제적 행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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