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 전체 인물 보기

Underwood & Underwood, New York, April 1921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published before 1931)

물리학자 · 20세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879–1955

주요 업적 분야

과학역사교육

핵심 특성


삶의 궤적

1879 — 태어났다.

1905 — 특허청 직원으로 일하면서 한 해에 특수상대성이론을 포함한 논문 네 편을 발표했다.

1915 — 10년에 걸친 반복적인 연구 끝에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

1933 — 나치가 독일에서 권력을 잡자 미국으로 이주했다.

1939 — 핵분열의 군사적 잠재력을 경고하는 아인슈타인-실라르드 편지에 서명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냈다.

1955 — 사망했다.


주요 업적

1905년 — 그의 '기적의 해' — 스위스 특허청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특수상대성이론, 광전효과, 브라운 운동, 질량-에너지 등가라는 네 편의 획기적인 논문을 대학 소속 없이 발표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약 10년에 걸친 반복적인 연구 끝에 완성되었으며, 그 과정에는 시도했다가 포기한 여러 접근법이 있었고 마침내 1915년 최종 장방정식에 도달했다.

1939년, 어느 정부 기관의 요청도 없이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와 함께 작성되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서명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실어 핵분열의 군사적 잠재력을 경고했다 — 역사가들은 이 편지가 맨해튼 프로젝트 착수 결정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고 본다.


삶의 장면들

어린 시절, 나침반을 아무리 돌려도 바늘이 항상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 그는 훗날 이 경험을 자신의 과학적 호기심이 처음 싹튼 순간으로 여러 차례 언급했다.


전환점

그 자신이 양자론의 토대를 놓은 사람 중 하나였음에도 — 1905년의 광양자 가설과 1924~25년 보스와 함께한 양자 통계 연구 모두 그 토대의 일부였다 — 그는 훗날 양자역학이 제시한 확률적 자연관을 끝내 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 반대 입장을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요약했다. 이미 명성이 확고해진 뒤에도 남은 생애의 수십 년을 성과 없는 통일장 이론 연구에 쏟았으며, 그 사이 물리학계의 논의는 그를 남겨둔 채 앞으로 나아갔다.

프로필의 낮은 입장 수정(belief_updating) 점수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 새로운 이론을 초기 회의론자들로부터 지켜낼 수 있게 해준 바로 그 확신이, 양자역학이 불완전하다는 그의 입장을 끝내 바꾸지 않게 만들기도 했다. 다만 그가 공동 집필한 1935년 EPR 논문을 비롯한 그의 반박 자체는, 그가 끝까지 저항했던 바로 그 분야에서 지금까지도 영향력 있는 토대의 일부로 남아 있다. 입장 수정 성향


비슷한 인물

전체적인 프로필이 이 사람과 닮은 사람들이에요.

반대 프로필

경쟁 상대가 아니라, 살펴볼 만한 다른 프로필 형태예요.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