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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hina News Service, 2019, CC BY (YouTub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 Wikimedia Commons 'Yuan Longping at news conference (cropped).png', a frame from a China News Service video of 5 September 2019 (Changsha press interview) uploaded to the official China News Service YouTube channel, which shows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licence on the live watch page (checked 2026-10-24); the Commons file carries a YouTube licence review dated 29 September 2023. Saved at the Commons cropped size of 538 x 717 pixels (converted from PNG to JPEG with no resizing or upscaling). The licence is the YouTube-stated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licence (CC BY 3.0 in YouTube's terms), a platform-level licence on a single video from the news agency's own channel; no conflicting account-level or institutional notice was found. · CC BY 3.0 (YouTub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농학자 · 20세기

위안룽핑

1930–2021

주요 업적 분야

과학기술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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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벼는 자가수분 작물이라 뚜렷한 잡종강세가 없다는 통념에 맞서 웅성불임을 이용해 잡종 종자를 만드는 방법으로 교잡 벼를 개발했다. 핵심 야생 웅성불임 개체를 찾은 조수 리비후 등 동료들과 함께 1976년까지 중국에서 널리 보급했고 수량은 20~30% 높았다.

중국의 교잡 벼 국가 공동연구를 이끌었고, 이후 이 기술을 확장한 양계법 및 슈퍼 교잡 벼 사업을 제안하고 주도했다.

교잡 벼 기술과 육종 재료를 해외 과학자들과 나누어 80여 개국 약 1만 4천 명의 교육으로 이어졌고, 2004년 울프 농업상을 받았다.


삶의 장면들

1964년 그는 교잡 벼 연구를 시작해 논문 '벼의 웅성불임'을 발표했다. 손으로 수술을 제거하기 어려운 작물에서 잡종강세를 쓰려면 웅성불임을 이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당시에는 벼에 뚜렷한 잡종강세가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는 자신의 추론을 믿고 분야의 통념에 맞서 연구하는 태도와 부합한다. 독립적 사고

2012년 그는 2015년까지 슈퍼 교잡 벼 헥타르당 15톤 수확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비판자들은 기록 달성 시험포의 비용이 농민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고 병충해 저항성이 약하다고 지적했고, 연구센터는 수량이 맡은 연구 분야이며 시험포용 목표라고 답했다.

이는 수량 기록을 끝까지 끌어올리려는 강한 의욕과 부합하지만, 농민에게 주는 실질적 가치는 논란이 되었다. 성취 욕구


전환점

1970년 말 조수 리비후가 하이난에서 야생 웅성불임 벼를 찾았고 위안룽핑이 '예바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를 바탕으로 1972년 첫 웅성불임계와 유지계가 만들어지고 1973년 회복계가 확보되어 1976년에는 교잡 벼가 널리 생산되었다.

이는 핵심 개체가 발견되고 팀이 전체 육종 체계를 완성하면서 오래 이어온 연구가 실용 규모에 이른 전환과 부합한다. 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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