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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Ministry of Education, Culture, Sports, Science and Technology (Japan), Minister's Secretariat Personnel Division, CC BY 4.0 · Wikimedia Commons, 'Shigeru Miyamoto 20150610.jpg' -- portrait photograph by the Minister's Secretariat Personnel Division of Japan's Ministry of Education, Culture, Sports, Science and Technology, published on the ministry's Person of Cultural Merit page. Original 2000 x 1670 pixels (SHA-1 c3cc612b, matches the Commons record); saved here downscaled once to 1200 x 1002 pixels (no crop, never upscaled). Lead review: photograph date unresolved - the Commons EXIF/description say 10 June 2015 but the credited ministry page is the 2019 honours list (Wikipedia gives the Person of Cultural Merit as 2019); both dates are recorded and the file does not depend on the date for its CC BY 4.0 basis. · CC BY 4.0

제품 디자이너 · 현대

미야모토 시게루

b. 1952

주요 업적 분야

예술문화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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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미야모토는 1977년 닌텐도에 디자인 담당으로 입사했고, 첫 주요 임무는 팔리지 않은 레이더스코프 기판에 넣을 새 아케이드 게임이었다. 그 결과물인 『동키콩』(1981)에서 훗날 마리오가 되는 캐릭터가 등장했다. 백과사전 사이트 엔사이클로피디아닷컴의 인물 항목은 모자와 콧수염 같은 초기 모습이 당시 하드웨어의 픽셀 제약에서 나왔다고 쓴다.

그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 『젤다의 전설』을 만들었고, 『슈퍼 마리오 64』(1996)로 시리즈를 2D에서 3D로 옮겼다. 이와타가 묻는다 인터뷰는 그를 『슈퍼 마리오 64』의 감독으로 소개한다. 이후 『시간의 오카리나』(1998), 『피크민』, 『스타폭스』에도 이름을 올렸고, 『슈퍼 마리오 갤럭시』에서는 감독이 아닌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2012년 아스투리아스 왕세녀상 재단은 그에게 커뮤니케이션·인문 부문상을 수여했고, 심사위원단은 그를 교육적이고 구성적인 비디오 게임 혁명의 주요 설계자라고 불렀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019년 문화공로자 명단에 그를 미디어 예술(게임) 분야, 닌텐도 대표이사 펠로로 올렸다.


삶의 장면들

『슈퍼 마리오 갤럭시』를 두고 미야모토는 이와타가 묻는다 인터뷰에서 중력과 구형 필드를 3D 마리오의 고유한 특징으로 골랐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그런 것을 게임이라 부를 수 있느냐며 반대했고, 그는 『페이퍼 마리오』와 『마리오 128』에서 말린 모양이나 구형 필드를 시도했다가 접어 두었던 일을 떠올렸다.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전 아이디어를 되살려 여러 프로젝트에서 시험해 보는 태도와 일치한다. 실험 성향

레트로 스튜디오의 마크 파치니는 이 텍사스 스튜디오가 『메트로이드 프라임』을 시작했을 때 미야모토의 첫 지시가 모프볼과 1인칭 시점 사이의 전환을 매끄럽게 하라는 것이었고, 그러지 못하면 이 게임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었다고 회상했다. 팀이 이를 해내는 데 몇 달이 걸렸고, 그제야 미야모토가 승낙했다.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 전에 게임 조작감의 구체적인 부분을 끝까지 따지는 태도와 일치한다. 디테일 지향


전환점

『슈퍼 마리오 갤럭시』에 이르러 미야모토는 『슈퍼 마리오 64』 때와 달리 감독이 아닌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이와타가 묻는다 인터뷰에서 자신이 감독이었다면 이 게임을 만들지 못했을 것 같다고 했고, 팀이 도쿄에 있는 동안 교토에 머물며 이메일과 화상회의로 새 빌드를 검토했다고 말했다.

게임을 직접 연출하는 데서 다른 사람이 이끄는 팀을 이끌어 주는 쪽으로 옮겨 간 것과 일치한다. 협업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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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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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