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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 Johnson Space Center, photo S69-31742, Apollo 11 prime crew portrait, 16 April 1969, downscaled from the original · NASA Johnson Space Center photograph S69-31742, 'APOLLO XI - PRIME CREW PORTRAIT' (Astronaut Michael Collins; NASA record date 16 April 1969, although the record's caption text begins '(July 1969)'), downloaded from the NASA Image and Video Library original (6461 x 8076 pixels, 5,464,797 bytes), the same size as the Wikimedia Commons file 'Michael Collins (S69-31742).jpg' (author NASA, tagged public domain as a NASA work, with only the standard personality-rights warning). This is the NASA original, NOT the Commons restoration 'Michael Collins (S69-31742, restoration).jpg' (a third-party digital restoration of the same photograph). NASA's Media Usage Guidelines say NASA content is generally not subject to copyright in the United States and that third-party copyrighted material is marked with the holder's name; this record carries no third-party credit and no logo. Downscaled once to 960 x 1200 (never upscaled). · Public Domain (NASA work)

우주비행사 · 20세기

마이클 콜린스

1930–2021

주요 업적 분야

역사과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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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콜린스는 최초의 달 착륙 임무였던 아폴로 11호(1969년 7월 16~24일)의 사령선 조종사였다.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착륙선 이글을 타고 달 표면으로 내려가는 동안 그는 사령선 컬럼비아호에 남아 21시간 넘게 혼자 달 궤도를 돌았고, 두 사람이 달 표면에서 이륙해 돌아오자 마지막 도킹 기동을 맡아 승무원들이 다시 합류해 지구로 돌아올 수 있게 했다.

1966년 7월 그는 존 영과 함께 제미니 10호를 조종했다. 사흘간의 이 비행에서는 먼저 아제나 표적 우주선 하나와 랑데부·도킹한 뒤 그 아제나의 엔진을 이용해 궤도에 남아 있던 두 번째 아제나와 다시 랑데부했다. 콜린스는 열린 해치에서 서서 작업한 선외활동과 줄을 달고 나가 두 번째 아제나에서 미소 운석 실험 장치를 회수한 우주 유영까지 두 차례 선외활동을 했으며,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은 그를 한 임무에서 우주 유영을 두 번 한 최초의 사람으로 소개한다.

NASA를 떠난 뒤 그는 1971년부터 1978년까지 스미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장을 맡았다. 그가 부임했을 때 건물은 승인만 났을 뿐 예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는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의 지원으로 예산을 확보해 1972년에 착공했으며, 1976년 7월 1일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박물관이 문을 열기까지 팀을 이끌었다. 박물관은 그의 1974년 회고록 『Carrying the Fire』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역대 최고의 우주비행사 회고록으로 꼽는다고 설명한다.


삶의 장면들

제미니 10호의 두 번째 우주 유영에서 콜린스는 두 번째 아제나를 향해 몸을 밀어 날아갔지만 도킹 콘의 매끈한 가장자리를 붙잡지 못하고 실험 장치에서 멀어졌다. 우주선에서 약 5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그는 감겨 있는 생명줄을 당길지 손에 쥔 추진 건을 쓸지 재빨리 결정해야 했고 추진 건을 택했다. 짧게 여러 번 분사해 우주선으로 갔다가 다시 아제나에 다가가 미소 운석 실험 장치를 회수했다. 손에 쥔 장치를 잃을까 봐 교체용 장치를 설치하는 일은 포기했고, 이후에는 생명줄에 몸이 엉켜 영의 도움으로 풀려나야 했다.

계획한 접근이 실패했을 때 즉석에서 쓸 만한 해법을 찾아낸 모습과 일치하지만, 작업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고 이후 생명줄이 몸에 엉키기도 했다. 자원 활용 성향

이글이 달 표면에서 이륙해 랑데부한 뒤 콜린스는 자동 조종 상태로 컬럼비아호를 이글에 도킹했다. 암스트롱이 대략적인 자세 정렬을 해 두면 콜린스가 마지막 조정을 맡았다. 도킹 프로브를 끌어당기는 가스 장치를 작동시키자 두 우주선 사이에 요 방향 진동이 커졌고, 그는 수동 조종으로 자세를 바로잡으며 착륙선을 놓아 주고 다시 시도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치를 작동시킨 지 6~8초 뒤 걸쇠가 잠겼다. 1969년 기술 보고에서 그는 진동이 어떻게 될지 충분히 지켜보지 않았고 작동 전에 더 기다리는 편이 나았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진동의 원인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다시 해도 달리 할지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암스트롱의 보고는 같은 순간을 착륙선 안에서 설명한다.

도킹을 마친 뒤 자신의 절차를 솔직하게 되짚으면서도 원인이 분명하지 않다고 밝힌 조종사의 모습과 일치하지만, 이 설명은 본인의 기술 보고에 근거한다. 입장 수정 성향


전환점

콜린스의 첫 번째 NASA 우주비행사 지원은 1962년에 거절되었다. 훗날 그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통지서는 그가 우주비행사 프로그램의 특별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이듬해 다시 지원했고 1963년 10월 NASA의 세 번째 우주비행사 그룹으로 선발되어 제미니 10호와 아폴로 11호로 가는 길에 올랐다.

거절을 다시 지원할 이유로 삼은 지원자의 모습과 일치하지만, 두 보도의 설명은 모두 그의 회고록에 바탕을 둔다. 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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