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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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Joi (Joichi Ito), 2012, CC BY 2.0 · Wikimedia Commons 'Marvin Minsky (1).jpg', photograph by Joi (Joichi Ito), 19 July 2012, from Flickr (photo 7641726266), tagged CC BY 2.0 with a FlickreviewR pass dated 26 January 2013; the live Flickr photo page currently shows licence code 4 (Attribution, CC BY 2.0). Original 4680 x 3120, downscaled once to 1200 x 800 (no upscaling). The Wikidata P18 image (uploader-asserted CC BY 3.0 copied from English Wikipedia, no Flickr or institutional origin) was not used for lack of a verifiable origin; the MIT News photograph (Bachrach) is under a non-commercial no-derivatives licence and was not used. The Commons page does not carry a sitter caption beyond 'Marvin Minsky' by the photographer; the person looks consistent with other dated photographs of Minsky. · CC BY 2.0

컴퓨터 과학자 · 현대

마빈 민스키

1927–2016

주요 업적 분야

과학기술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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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1950년대 말 존 매카시와 함께 MIT 인공지능 그룹을 세웠고, 이는 MIT 인공지능 연구소(현 CSAIL)로 이어졌으며, 이후 MIT 미디어랩의 창립 구성원이 되었다.

지식을 기본값이 있는 슬롯으로 저장하는 프레임 이론을 제시했고, 1985년 『마음의 사회』에서 지능이 서로 협력하는 수많은 단순한 행위자들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1951년 초기 신경망 학습 기계를 만들었고, 시모어 페퍼트와 함께 단순 퍼셉트론이 계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석한 『퍼셉트론』을 썼으며, 1969년 ACM 튜링상을 받았다.


삶의 장면들

크레비에에 따르면, 민스키는 신경망을 추상적으로 연구하는 대신 동료 대학원생 딘 에드먼즈와 함께 1951년 여름 남는 부품으로 40개 뉴런짜리 기계를 만들었다.

이는 아이디어를 실제 기계를 만들어 시험해 보려는 성향과 일치한다. 실험 성향

크레비에는 민스키가 논리가 지능의 기본 속성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칼 휴잇과 함께 일본을 찾아가 프롤로그 채택을 재고하라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고 전한다.

이는 분야의 흐름에 맞서 소수 의견을 유지하고 직접 설득하려는 태도와 일치한다. 독립적 사고


전환점

1954년 프린스턴 박사 학위 뒤 민스키는 추론할 만큼 큰 신경망에는 자신이 만들 수 없는 수천~수백만 개의 뉴런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기계가 생각하게 하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는 이전 방법의 실질적 한계가 드러나자 접근법을 바꾸는 태도와 일치한다. 입장 수정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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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