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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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dyk (photographer), published by Rotary Photo, E.C., between 1909 and 1916; Library of Congre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LC-USZ62-100564), no rights restriction stated in the record · Library of Congre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LOT 6131 (LC-USZ62-100564; hdl.loc.gov/loc.pnp/cph.3c00564), photographic print 'M. Blériot, the first man to fly the channel', Vandyk, published as a Rotary Photo postcard; Ernest L. Jones Collection; also on Wikimedia Commons as 'Louis Bleriot.jpg' · Public domain

비행사 · 20세기

루이 블레리오

1872–1936

주요 업적 분야

기술공학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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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블레리오는 1909년 7월 25일 자신의 11호 단엽기를 몰고 칼레 근처에서 도버까지 약 31마일을 대략 40분에 날아, 비행기로 영국 해협을 처음 건넌 사람이 되었다. 이 비행으로 그는 데일리 메일이 내건 상금 1,000파운드를 받았다.

블레리오는 1900년부터 실험을 거듭한 끝에 소형 단엽기 11호를 주력 기종으로 삼았고, 영국 해협 비행 12일 전에는 이 기체로 약 25마일을 들판과 마을 위로 날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그의 공장은 1909년 7월부터 1914년 8월 사이에 항공기를 800대 넘게 만들었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11호 단엽기이거나 그 변형이었으며, 1914년에는 스패드(SPAD) 복엽기를 만든 회사를 인수했다.

블레리오는 항공기에 뛰어들기 전에 자동차 전조등과 부품을 만드는 사업을 했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 사업으로 모은 재산이 그의 초기 항공 연구 비용을 댔다고 설명한다. 『플라이트』지는 1909년에 그의 이름이 붙은 아세틸렌 램프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소개했고, 그가 9년 동안 비행기 실험에 약 2만 파운드를 썼다고 스스로 추산했다고 전했다.


삶의 장면들

『플라이트』지에 따르면 블레리오는 1909년 7월 25일 새벽 2시 반쯤 일어나 짧게 시험 비행을 한 뒤, 나침반도 시계도 없이 프랑스 시간 4시 40분께 영국을 향해 출발했다. 그는 곧 호위 구축함을 앞질렀고, 본인의 추산으로 약 10분 동안 육지도 배도 보이지 않는 곳을 날았다. 그라함화이트와 해리 하퍼는 바람이 거세지고 있어 곧장 가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판단해, 호위함을 기다리며 선회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플라이트』 편집진은 이 비행을 '다소 무모했다'고 평했고, 블레리오 자신도 그 점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나침반 없이 바다 위로 나서고 호위함을 기다리지 않은 일은 높은 위험 감수 성향과 부합한다. 같은 잡지는 그가 취한 안전 조치와 행운이 따랐다는 점도 함께 적고 있어, 이런 태도에는 실제 대가도 따랐다. 위험 감수

찰스 터너는 항공 역사서에서 블레리오의 연이은 사고를 열거한다. 1906년 11월 4호 복엽기가 도랑에 처박혔고, 1907년 4월 5호 단엽기는 첫 비행 며칠 뒤 부서졌으며, 1907년 9월 17일에는 6호가 파손되었고, 같은 해 12월에는 7호가 선회 중 날개 끝이 땅에 닿아 뒤집혔다. 터너는 블레리오가 곧바로 8호 설계에 착수했다고 쓰고, 사고 횟수를 50번까지 세는 사람도 있다고 덧붙인다. 『플라이트』는 1909년에 그가 9년간 실험에 약 2만 파운드를 썼다고 전했다.

몇 해에 걸쳐 사고가 날 때마다 다시 기체를 만든 일은 끈기와 부합한다. 터너와 『플라이트』는 사고의 연속을 서술할 뿐 블레리오 본인의 동기를 밝히지는 않으므로, 행동의 패턴은 기록으로 확인되지만 동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끈기


전환점

영국 해협 비행 뒤 11호 주문이 빠르게 밀려들었다. 『플라이트』는 1909년 7월에 그가 이미 15대를 팔았고, 8월에는 11월까지 36대를 대당 약 400파운드에 인도하기로 했으며, 9월에는 101번째 기체를 팔아 납품을 맞추기 위해 예정했던 베를린 비행 시연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터너는 그가 경기와 곡예비행을 그만두고 제작에 전념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쓴다.

주문이 밀려드는 때에 조종사이자 실험가에서 전업 제작자로 옮겨 간 일은 기회 포착과 부합한다. 자료는 그 결정과 비판을 전할 뿐 그의 이유를 밝히지는 않는다. 기회 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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