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전체 인물 보기

Wolfgang Hunscher, Dortmund, CC BY-SA 3.0 · Wolfgang Hunscher, Dortmund (own work), via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공학자 · 20세기

콘라트 추제

1910–1995

주요 업적 분야

기술공학혁신

아직 성격 매칭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 기록된 근거가 성격 모델 전체를 다루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페이지의 다른 모든 내용은 자유롭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핵심 특성


주요 업적

추제는 1936년부터 1938년까지 베를린에 있던 부모님 집에서 Z1을 만들었다. Z1은 천공 테이프에서 명령을 읽어 들이는 기계식 이진 부동소수점 계산기였다. 1941년 5월 12일에는 릴레이 방식의 후속기 Z3를 베를린 자택에서 소수의 전문가들에게 선보였다. Z3는 공습으로 파괴되었고, 그의 지휘로 1962년에 완성된 복제기가 1968년부터 뮌헨의 독일 박물관(도이체스 무제움)에 전시되어 있다.

추제는 1943년경부터 1945년까지 플란칼퀼(Plankalkül)을 고안했다. 이것은 어떤 계산 절차든 순수하게 형식적으로 기술하기 위한 표기법으로, 하나의 비트 자료형에서 출발해 복합 자료형을 쌓아 올리는 구조였다. 1945년 원고에는 정렬, 그래프 연결성 검사, 정수 및 부동소수점 연산, 체스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담겨 있었다. 이 원고는 1972년까지 출간되지 않았고, 1948년과 1959년에 발췌본만 실렸다.

1949년 9월 7일 추제는 바젤의 바디셔 반호프 역 식당에서 취리히 연방공과대학(ETH)과 Z4의 5년 임대 계약을 맺었다. 이는 에두아르트 슈티펠이 그해 7월 13일 알고이의 호프라우로 그를 찾아온 뒤의 일이었다. Z4는 1950년 7월 11일부터 1955년 4월까지 ETH에 설치되어 있었고, ETH의 요청으로 조건부 분기 기능이 추가되었다. 추제 KG는 계약보다 몇 주 앞서 노이키르헨에서 설립되었다.


삶의 장면들

1936년 4월 11일 추제는 변리사를 통해 특허를 출원했다. 저장된 수치 집합과 '계산 계획'으로 긴 계산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기계가 긴 계산을 스스로 처리하는 만큼 사람의 습관을 따르지 않고 가장 단순한 수 체계를 쓸 수 있다고 논증했으며, 스위칭 소자를 전기식으로 할지 기계식으로 할지는 열어 두었다. 이 출원은 1940년 8월에 취하되었다.

원리를 특정 하드웨어와 분리하여 서술한 점은 시스템 추상화 점수와 부합한다. 시스템적 사고

1953년 4월 트리움프 베르케(Triumph Werke)가 Z 391 출원에 이의를 제기하자(IBM 도이칠란트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추제 KG는 청구항을 여러 차례 다시 썼다. 1956년 5월 8일의 회신에서 추제는 배비지가 프로그램 제어의 기본 발상을 제시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은 제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967년 7월 14일 연방특허법원은 그의 항고를 기각했는데, 청구 대상의 신규성과 기술적 진전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특허를 받을 만한 발명 단계(진보성)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수년에 걸쳐 거듭된 이의에 맞서 청구항을 다시 쓴 점은 끈기 점수와 부합한다. 끈기


전환점

Z1의 기계식 연산 장치는 걸려서 멈추는 일이 잦았고, 추제는 1938년 연산 장치에 전화 릴레이를 쓰되 기억장치는 기계식으로 남겨 둔 Z2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1939년부터 1941년까지 제작한 Z3는 전체를 릴레이로 구성했다. 로하스(Rojas)에 따르면 추제는 그럼에도 Z4에는 기계식 기억장치를 유지했고, 1940년대 후반까지도 그런 기억장치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논리 회로는 릴레이로 옮기되 기계식 기억장치는 유지한 점은 중간 수준의 믿음 갱신 점수와 부합한다. 입장 수정 성향


비슷한 인물

전체적인 프로필이 이 사람과 닮은 사람들이에요.

세쿼야

학자1770–1843
91% 프로필 일치도

반대 프로필

경쟁 상대가 아니라, 살펴볼 만한 다른 프로필 형태예요.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