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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Grantham Bain Collection, Library of Congre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photographer not individually credited; date unrecorded) · Library of Congre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George Grantham Bain Collection, digital id ggbain.02631 (record: https://hdl.loc.gov/loc.pnp/ggbain.02631), via Wikimedia Commons file 'Knud Rasmussen 01.jpg' (2351 x 3042 original; downsized, never upscaled) · Public domain (Bain News Service photograph; LOC rights note as transcribed on Commons: 'No known restrictions on publication'; Commons tags PD-old-70 and PD-US-expired)

탐험가 · 20세기

크누드 라스무센

1879–1933

주요 업적 분야

역사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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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라스무센은 1921~24년 제5차 툴레 탐험을 이끌었다. 이 덴마크 민족지 탐험대는 허드슨 만 북쪽 다니시 아일랜드(Danish Island)의 기지에서 먼저 활동했다. 1923년 3월부터 5월까지 그는 이누이트 동행자 카비가르수아크(Qavigarssuaq), 아르나룰룽와크(Arnarulunguaq)와 함께 개 썰매로 다니시 아일랜드에서 알래스카의 포인트 배로까지 갔고, 이어 놈(Nome)에 닿아 도중에 여러 이누이트 집단을 방문했다. 탐험대는 2만 점이 넘는 표본, 그중 약 1만 5천 점의 민족지·고고학 자료를 가져왔고, 옛 집터 발굴을 통해 툴레 문화가 발견되었다.

탐험의 성과는 영어판 『제5차 툴레 탐험 보고서 1921-24』로 출간되었다. 라스무센은 이글룰릭(1929), 카리부(1930), 네칠릭(1931), 구리 이누이트(1932)의 지적 문화에 관한 권들을 집필해 그들의 신앙과 샤먼, 전승을 기록했고, 『덴마크 인명사전』은 이를 그의 주된 학문적 저작으로 평가한다. 역사가 켄 하퍼(Kenn Harper)는 라스무센의 작업이 없었다면 이들 집단 상당수의 종교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쓰지만, 이누이트 문화가 내륙에서 시작되었다는 그의 이론은 이후 고고학으로 뒤집혔다.

1910년 라스무센은 기술자 이브 뉘보에(Ib Nyeboe)와 함께 그린란드 북서부 노스스타 만에 툴레 교역소를 세웠다. 이 교역소는 극지 이누이트에게 총과 도구 등 물품을 공급하고 탐험의 기지로 쓰이기 위한 곳이었으며, 피터 프로이헨(Peter Freuchen)이 처음 10년간 운영했다. 교역소의 수익은 대부분의 툴레 탐험 비용을 댔고, 1912년 제1차 툴레 탐험은 그린란드 내륙 빙하를 가로질러 독립 피오르(Independence Fjord)에 이르렀으며 피어리 해협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삶의 장면들

1917년 8월, 제2차 툴레 탐험의 그린란드 북부 해안 여행에서 돌아오던 중 일행은 식량이 떨어졌고 8월 24일 마지막 개를 잡아먹었다. 여행의 영향을 가장 덜 받던 라스무센과 이누이트 사냥꾼 아야코(Ajako)는 225km 떨어진 에타(Etah) 정착지로 먼저 걸어 나섰다. 그는 8월 25일에 출발해 30일에 도착했고, 그날 밤 구조 썰매 다섯 대가 출발했다. 이들은 9월 4일 라우게 코크(Lauge Koch) 일행을 만났으나, 그때는 이미 식물학자 토르일드 불프(Thorild Wulff)가 숨진 뒤였다.

너무 쇠약해 움직이기 어려운 동료들을 위해 먼저 걸어 도움을 구하러 가서 닷새 만에 그 거리를 간 것은 끈기와 일치한다. 이 기록은 동료가 쓴 것으로 호의적이다. 끈기

라스무센은 『북극 아메리카를 가로질러』(1927) 서문에서, 이누이트가 본래 내륙 사냥꾼이었다가 나중에 해안으로 옮겨 갔다는 H. P. 스텐스뷔(Steensby)의 이론을 다시 내세우며 탐험대의 모든 연구가 이를 뒷받침했다고 썼다. 이후 그의 동료 마티아센의 연구를 포함한 고고학은 이누이트 문화가 알래스카에서 동쪽으로 퍼졌음을 보여 주었고, 하퍼는 내륙 기원설이 오늘날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전한다. 하퍼는 또 라스무센이 내륙과 해안 민담의 유사성을 최근 해안에서 빌려 온 결과로 돌렸다고 덧붙인다.

상반되는 고고학적 발견이 나온 뒤에도 이론을 유지한 것은 이 한 가지 학문적 문제에 한해 낮은 신념 수정 점수와 일치한다. 하퍼는 자료가 이론을 만들어 가기보다 이론을 뒷받침하는 데 쓰였다고 읽는다. 입장 수정 성향


전환점

1902년 22세의 라스무센은 루드비 뮐리우스에리크센(Ludvig Mylius-Erichsen)이 이끄는 문학 탐험에 참가했다. 『덴마크 인명사전』은 탐험 계획이 멜빌 만 너머 극지 이누이트 지역까지 넓어진 것은 주로 그 덕분이라고 하며, 일행은 그들 사이에서 겨울을 났다. 마티아센은 그가 그곳에서 전설과 종교 관념을 모으며 '자신의 참된 영역을 찾았다'고 쓴다. 첫 책 『새로운 사람들』(Nye Mennesker, 1905)이 뒤를 이었고, 극지 이누이트는 툴레 교역소를 포함한 그의 활동의 고정점으로 남았다.

탐험을 극지 이누이트에게까지 밀고 가 겨울 내내 그들의 전승을 모은 것은 특정 민족에 대한 호기심과 일치하며, 이는 이후 그의 작업 방향을 정했다.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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