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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bota Beisen, Portrait of Ito Jakuchu, Meiji period. Shokoku-ji, Kyoto, public domain · Portrait of Ito Jakuchu by Kubota Beisen (1852-1906), one hanging scroll, colour on silk, Meiji period (Commons gives 1885, which the holder's exhibition listings do not confirm), in the collection of Shokoku-ji, Kyoto, exhibited at its Jotenkaku Museum. A posthumous portrait made about eighty-five years after his death, so shown as a later depiction and not as a likeness from life. The file is a promotional photograph of the scroll, used at its native 444 x 759 size with no resizing or upscaling; the temple site offers no item record or rights statement for it. · Public domain (a Meiji-period painting by an artist who died in 1906)

화가 · 근세

이토 자쿠추

1716–1800

주요 업적 분야

예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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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1757년부터 1766년까지 『동식채회(動植綵繪)』 30폭을 그렸다. 새와 식물, 물고기, 곤충을 촘촘히 그려 낸 이 작품은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그는 이를 쇼코쿠지에 기증했다.

닭 그림으로 유명한 짙은 채색의 화조화 양식을 만들었다. 일본의 사전류는 그의 그림을 관찰한 형태와 세밀한 묘사를 상상력 넘치는 화면으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교토 청과 도매상의 장남으로 태어나 마흔에 가업을 동생에게 넘기고 그림에 전념했으며, 1788년 대화재로 작업실과 가게를 잃은 뒤에도 세키호지 곁에서 작업을 이어 갔다.


삶의 장면들

가노파의 분본(粉本) 위주 방식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송·원·명 시대의 그림을 베껴 그리고 주변의 동식물을 사생하는 쪽으로 나아갔으며, 집에서 닭을 기르고 때로는 이국의 새를 들여와 관찰했다.

이는 물려받은 유파의 방식보다 직접 연구를 택하는 태도와 일치한다. 독립적 사고

리핏은 그가 1757년부터 1766년까지 해마다 대작 세 점 정도의 속도로 『동식채회』를 쉬지 않고 그렸으며, 값비싼 재료와 비단 뒷면에 칠하는 배채(背彩) 기법을 썼다고 설명한다.

이는 10년에 걸친 지속적이고 공들인 노력과 일치한다. 끈기


전환점

마흔 살에 집안의 청과 도매업에서 물러나 동생에게 넘기고 쇼코쿠지로 옮겨 『동식채회』를 시작했다.

이는 안정적인 가업을 내려놓고 전업 화가로 일하려는 선택과 일치한다. 자율성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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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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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