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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Oriel Eaton, 'Herman Melville', 1870, oil on canvas, commissioned by Melville's brother-in-law John Hoadley and presented to the family; now at the Houghton Library, Harvard University (accession 61Z-4). Rights chain verified from the Commons file page wikitext and upstream credit; Harvard's catalogue page was not retrievable by script so the Houghton holding rests on the Commons record. · Joseph Oriel Eaton, portrait of Herman Melville, oil on canvas, May 1870 (accession 61Z-4, Houghton Library, Harvard University), via Wikimedia Commons file 'Herman Melville by Joseph O Eaton.jpg' (original 1461x1801; downsized to 1298x1600, no upscaling) · Public domain (artist Joseph Oriel Eaton died 1875; PD-Art / PD-old-auto-expired on Commons)

작가 · 19세기

허먼 멜빌

1819–1891

주요 업적 분야

문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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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멜빌의 『모비 딕, 또는 고래』는 포경선 피쿼드호와 에이해브 선장이 흰 고래를 쫓는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로, 1851년 10월 런던에서, 같은 해 11월 뉴욕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에는 그가 직접 바다에서 보낸 경험이 담겨 있다. 미국 국립기록보관소가 소장한 아쿠슈네트(Acushnet)호 선원 명부에는 그가 1840년 12월 풋내기 선원으로 승선했고 1842년 7월 누쿠히바섬에서 배를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미국 서평은 대체로 호의적이었으며, 이 책이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20년대 재평가 이후였다.

멜빌의 첫 두 책 『타이피』(1846)와 『오무』(1847)는 태평양에서 보낸 시절을 쓴 이야기였다. 런던의 출판인 존 머리는 『타이피』의 영국 판권을 100파운드에 사들였고, 뉴욕의 와일리 앤드 퍼트넘이 이 책을 동시에 출간했다. 1849년 초까지 와일리 앤드 퍼트넘은 미국에서 6,392부를 팔았고, 대서양 양쪽의 서평가들이 두 책에 주목했다.

1853년 이후 멜빌은 짧은 산문과 시로 방향을 틀었다. 「필경사 바틀비」는 1853년 말 잡지에 실렸고, 잡지에 발표한 단편을 묶은 『피아자 이야기』는 1856년에 나왔다. 첫 시집 『전쟁 시편과 전쟁의 면모』는 1866년 하퍼 앤드 브라더스에서 출간되었고, 성지 여행(1856–57)을 바탕으로 쓴 약 2만 행의 장시 『클라렐』이 1876년에 뒤를 이었다.

멜빌은 1891년 사망하기 다섯 달 전에 『빌리 버드, 앞돛대 수병』을 완성했으나, 이 작품은 1924년 레이먼드 위버가 『빌리 버드와 기타 산문』을 펴낼 때까지 출간되지 않았다. 위버는 멜빌의 손녀의 도움으로 원고를 찾아냈으며, 이 책은 멜빌 전집의 일부였다.


삶의 장면들

1850~1851년 『모비 딕』을 쓰는 동안 멜빌은 피츠필드에서 농장도 꾸렸다. 위버와 멜빌 전기들이 인용한 아내의 일기에는 그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고, 어두워진 뒤 마을로 말을 타고 나갔으며, 아침 식사 전에 일찍 일어나 산책했다고 적혀 있다. 1851년 6월 그는 호손에게 책이 인쇄되는 동안 뉴욕에서 '일하고 매달리려' 한다고 편지에 썼다.

아내가 기록한 대로 농장 일과 긴 집필 일과를 함께 이어간 것은 자기 규율과 부합한다. 다만 증거가 주로 가족과 본인의 기록이어서 해석은 조심스럽게 유지한다. 자기 규율

1853년 이후 책 판매가 줄자 멜빌은 다른 수입원을 찾았다. 1853년 태평양 지역 영사직 청탁에는 다나, 동생 앨런 멜빌, 호손이 모두 힘을 보탰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1857년부터 1860년까지는 순회강연에 나서 서른 번이 채 안 되는 강연을 약 50달러의 사례로 소화했고, 1858년에는 '래브라도든 파타고니아 앞의 절망의 섬이든' 강연하러 가겠다고 썼다. 1866년 12월 5일에는 뉴욕 세관 검사관 자리를 얻어 약 20년 동안 근무했다.

수입이 줄자 집필에서 강연으로, 이어서 안정적인 공직으로 옮겨 간 것은 적응력과 부합한다. 다만 사료는 변화 자체만 서술할 뿐 그의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적응력


전환점

『타이피』와 『오무』의 성공 뒤 멜빌은 1849년 4월 폴리네시아를 배경으로 한 알레고리 소설 『마디』를 냈다. 서문에서 그는 앞선 두 여행기가 사실로 믿어지지 않았던 터라, 이번에는 지어낸 이야기가 사실로 받아들여지는지 시험해 보려는 생각에서 시작한 책이라고 밝혔다. 서평은 처음에는 호의적이었으나 1849년 내내 점점 적대적으로 바뀌었고, 멜빌은 런던 《애서니엄》이 작품을 난도질했고 《보스턴 포스트》가 불태웠다고 쓰면서 그런 공격은 '으레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어진 『레드번』과 『화이트 재킷』은 다시 바다 경험으로 돌아갔으나, 그 뒤에 『모비 딕』과 『피에르』가 나왔다.

인기를 끈 여행기 두 권 뒤에 독자와 서평가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한 알레고리를 낸 것은 독립적 사고와 부합하며, 그 선택은 독자층 일부를 잃는 대가를 치르게 했다. 독립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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