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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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Joe Ortuzar (Flickr: joe ortuzar), 7 March 2010, CC BY 2.0, cropped and downscaled from the original · Wikimedia Commons, 'Aretha Franklin.jpg' -- photograph credited on Commons to Joe Ortuzar (the Flickr source account is 'joe ortuzar' and the Flickr page shows only that username, so the real-name credit rests on the Commons upload record), taken 7 March 2010 at the Larry King Gala 2010 (EXIF Canon EOS 40D; Flickr title 'Larry King Gala 2010 193', tagged 'aretha' by the photographer); uploaded from Flickr and reviewed on 3 February 2018 by FlickreviewR 2 as CC BY 2.0, and the Flickr page checked directly shows 'Some rights reserved', CC BY 2.0; the file carries no restriction template and no copyright field in its EXIF or XMP data. Original 2821 x 2592 pixels; a 4:5 portrait region (2074 x 2592 pixels) was cropped from it and downscaled once to 960 x 1200 (never upscaled). · CC BY 2.0

가수 · 현대

아레사 프랭클린

1942–2018

주요 업적 분야

예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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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1966년 애틀랜틱 레코드로 옮긴 그는 1967년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와 오티스 레딩의 곡을 새롭게 해석한 「Respect」를 녹음했다. 「Respect」는 팝 차트 1위에 올랐고 그에게 첫 그래미상 두 개를 안겼다. 같은 해 「Chain of Fools」와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도 차트에 올랐고, 그는 '소울의 여왕(Queen of Soul)'으로 불리게 되었다.

1972년 로스앤젤레스의 뉴 템플 미셔너리 침례교회에서 이틀 밤에 걸쳐 라이브 가스펠 앨범 『Amazing Grace』를 녹음했다. 제임스 클리블랜드 목사와 서던 캘리포니아 커뮤니티 합창단이 함께했으며, NPR은 이 앨범이 역대 가장 많이 팔린 라이브 가스펠 앨범이 되었다고 전하고 브리태니커는 어느 시대의 가스펠 앨범과 견주어도 손꼽히는 명반으로 평가한다.

1987년 여성 최초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래미상을 18차례 받았고 1991년 그래미 레전드상과 1994년 평생공로상도 받았으며, 그의 녹음 다섯 곡이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다.


삶의 장면들

1967년 2월 14일 애틀랜틱의 뉴욕 스튜디오에서 그는 자매 캐럴린과 함께 피아노 앞에 앉아 오티스 레딩의 「Respect」를 손보기 시작했다. 템포와 프레이징을 바꿔 가며 새 브리지와 'sock it to me' 후렴을 더했다.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는 훗날 그 후렴이 프랭클린의 아이디어였다고 말했고, 레딩이 믹스를 듣고 "저 어린 아가씨가 내 노래를 가져가 버렸군" 하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빌려 온 곡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자신의 편곡으로 다시 만드는 습관과 일치한다. 창의적 독창성

199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출연 직전에 빠지게 되자, 제작자 켄 얼릭은 이틀 전 헌정 행사에서 같은 아리아를 불렀던 프랭클린에게 대신 무대에 서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먼저 조성(키)을 물었고 파바로티의 지휘자와 카세트 녹음을 들으며 맞춰 본 뒤 생방송으로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를 불렀다. 그가 받은 시간은 기록마다 달라서, 스미스소니언은 20분이라고 쓰고 제작자는 키를 맞추는 데 약 45분이 걸렸다고 회고한다.

짧은 준비 시간에도 아는 곡을 낯선 조건에 맞춰 바꿔 낼 수 있었던 모습과 일치한다. 적응력


전환점

1966년 그는 1961~66년 사이 앨범 아홉 장을 내고도 돌파구를 찾지 못한 컬럼비아를 떠나 애틀랜틱으로 옮겼다. 1967년 1월 앨라배마주 머슬 쇼울스의 페임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는 그가 이전 음반에서는 앞세우지 않았던 피아노를 직접 치며 스튜디오 리듬 섹션과 함께 노래하도록 했고,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그는 백보컬도 직접 구상했다. 그 세션의 싱글 「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는 그의 첫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새 방식이 그의 피아노 연주와 백보컬 구상을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자기 사운드를 직접 빚으려는 성향과 일치한다. 자율성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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