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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ettina Katzenstein, circa 1946, ETH-Bibliothek Zürich, Bildarchiv, Portr_01042, CC BY-SA 4.0 (cropped and downscaled; changes passed on under the same licence) · ETH-Bibliothek Zürich, Bildarchiv, Portr_01042 (E-Pics Bildarchiv, DOI 10.3932/ethz-a-000045505): portrait photograph of Wolfgang Pauli by Bettina Katzenstein, circa 1946, silver gelatin print 12.5 x 18 cm, as published by the ETH-Bibliothek itself on Wikimedia Commons ('ETH-BIB-Pauli, Wolfgang (1900-1958)-Portr 01042.tif', uploaded 22 February 2021 by the account ETH-Bibliothek, 2556 x 3643 pixels, the largest file available; it is also the source of Wikidata's image for him). Rights: the file carries CC BY-SA 4.0 as released by the ETH-Bibliothek, and the ETH-Bibliothek's image-archive terms of use say that images under CC BY-SA 4.0 are those whose usage rights lie entirely with the ETH-Bibliothek, may be used for all purposes with credit, and must be passed on under the same terms if changed. The image's own E-Pics record could not be read (a JavaScript application), so no conflicting notice there could be checked; none appears on the terms page or the Commons page. The print's white border was removed by cropping (2470 x 3555 pixels from the original) and the result downscaled once to 834 x 1200 (never upscaled); the photographer's signature on the print remains visible at lower right. It shows him in a dark suit and tie with a direct, serious gaze. · CC BY-SA 4.0

물리학자 · 20세기

볼프강 파울리

1900–1958

주요 업적 분야

과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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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1925년 파울리는 배타 원리를 정립했다. 원자 속의 어떤 두 전자도 같은 양자수 조합을 가질 수 없다는 이 규칙에는 새로운 이중값 양자수가 필요했고, 이 규칙은 원자의 전자껍질 구조를 설명해 준다. 노벨재단은 '배타 원리의 발견'으로 그에게 194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했고, 옥스퍼드의 한 물리학자는 이 규칙이 주기율표와 물질의 안정성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라고 평한다. 다만 파울리 자신은 이 규칙이 왜 성립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1930년 12월 파울리는 튀빙겐에 모인 물리학자들에게 보낸 공개 편지('친애하는 방사능 신사 숙녀 여러분')에서 베타 붕괴의 연속적인 에너지 스펙트럼을 설명할 '필사적인 해결책'을 제안했다. 전자와 함께 방출되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고 스핀이 1/2인 입자를 가정해 에너지 보존 법칙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노벨재단의 약력은 그를 훗날 중성미자라고 불리게 된 이 입자의 존재를 처음 인식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그는 이 생각의 발표를 약 3년간 미뤘고, 중성미자는 1956년 클라이드 코원과 프레더릭 라이네스가 검출했다.

파울리는 전자 스핀을 수학적으로 기술한 '파울리 행렬'을 내놓았는데, 한 서평자는 이를 물리학과 학부생이라면 누구나 안다고 말한다. 또 스핀과 통계의 관계를 증명해 양자장론을 공고히 했다. 학생 시절에는 아인슈타인이 서평에서 극찬한 상대성이론 해설서를 썼고, 1928년부터는 취리히 연방공과대학(ETH)에서 세계적인 이론물리학 연구 중심지의 하나를 일구었다.


삶의 장면들

1930년 12월 파울리는 중성미자 아이디어를 학술지가 아니라 튀빙겐에 모인 실험물리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알렸다. 그는 이 생각에 대해 아직은 감히 아무것도 발표하지 못하겠다고 쓰고, 자신의 해결책이 '거의 있을 법하지 않아 보일 수 있다'고 인정하며 그들에게 '면밀히 살펴보고 판단해 달라'고 청했다. 이 추측이 인쇄물로 나오기까지는 약 3년이 더 걸렸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을 다른 이들이 검토해 보기 전에는 내놓지 않으려 한 이론가의 모습과 일치하지만, 이 편지는 파울리 자신의 서술이며 3년의 지연은 서평자의 해석이다. 완벽주의

1957년 1월 17일 파울리는 '신이 약한 왼손잡이라고는 믿지 않는다'며, 베타 붕괴 실험이 전자의 대칭적인 각분포를 보여 줄 것이라는 쪽에 큰돈을 걸 용의가 있다고 썼다. 그 뒤 존 블랫이 '패리티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고, 1월 19일 파울리는 우젠슝에게 그 비대칭이 '경험적으로 아주 확립되어 있다'고 썼으며, 1월 27~28일에는 빅터 바이스코프에게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미 대칭을 되살릴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확고한 기대를 품고 있었지만 며칠 만에 실험 결과를 받아들인 이론가의 모습과 일치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대칭을 되살릴 방법을 찾았고, 이 기록은 한 학자가 그의 편지를 읽은 해석에 의존한다. 입장 수정 성향


전환점

1928년 4월 말 취리히 연방공과대학(ETH) 교수직을 맡기 전, 파울리는 조교를 두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랄프 크로니히에게 그 일이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상세한 논거로 반박하는 것'이며 현대적인 착상으로 학문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라고 편지를 썼다. 그는 취리히에서 세계적인 이론물리학 연구 중심지의 하나를 일구었고, 1950년대 초의 한 대학원생은 한 콜로키움에서 그가 강하게 반박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회상했다.

의견 충돌을 작업 환경에 아예 심어 둔 물리학자의 모습과 일치하지만, 그는 일부 청중이 위축될 만큼 날카롭게 반박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갈등 감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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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