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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Thomas, 1661, mezzotint after Titian; Rijksmuseum, Amsterdam (RP-P-1910-1486), Public Domain, cropped and downscaled from the original · Rijksmuseum, Amsterdam, collection record RP-P-1910-1486, 'Zelfportret van Titiaan' (Self-portrait of Titian): mezzotint and engraving by Jan Thomas (named on the print) after a painting by Titian, dated 30 March 1661 (inscribed 'Il vero ritratto del unico Titiano', dedicated to the Empress Eleonora, Vienna), plate 314 x 245 mm; the museum's record states 'Copyright: Public domain', and the Commons file of the museum's scan is tagged CC0 (original 5544 x 7108 pixels). The print was cropped to the plate image (the caption block and paper margins removed) and downscaled once to 1054 x 1200 (never upscaled). A later print after Titian's own self-portrait (a profile like the Prado's self-portrait, though the record does not name the painting copied), not a likeness drawn from life by the printmaker. · Public Domain (Rijksmuseum record states Public domain; CC0 digital file; mezzotint of 1661)

화가 · 근세

티치아노

1490–1576

주요 업적 분야

예술문화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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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그는 베네치아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 잡았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는 1518년 공개된 프라리 성당의 『성모 승천』이 베네치아 제단화 설계의 혁명적인 분수령이었다고 설명하며 그를 16세기 베네치아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는다.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는 그가 생전부터 색채의 최고 거장으로 여겨졌다고 말한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는 그가 고객이 주로 국제적이었던 최초의 화가라고 설명한다. 그는 황제와 교황, 총독, 군주의 초상화를 그렸고, 1530년 카를 5세와 만난 뒤 그의 수석 화가가 되었으며, 페라라의 알폰소 데스테를 위해 신화화를 그렸다. 1551년경부터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를 위해 '포에지(시)'라 부른 오비디우스 신화 연작 여섯 점을 그렸다.

말년의 수십 년 동안 그는 훨씬 자유로운 붓질을 발전시켰고, 영국 내셔널 갤러리는 『악타이온의 죽음』과 원래 자신의 무덤에 두려던 『피에타』 같은 작품에서 그가 회화를 추상의 가장자리까지 밀고 갔다고 설명한다.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는 루벤스와 반 다이크, 벨라스케스가 그의 본보기에 깊이 빚지고 있다고 본다.


삶의 장면들

1559년 9월 22일 티치아노는 펠리페 2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 점의 『디아나』 그림에 3년이 넘게 걸린 것은 자신이 자신의 노력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더 다듬고 끌어올리려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해 8월 베네치아 주재 스페인 대사는 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티치아노가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사소한 부분들'을 해결하고 싶어 20일 안에 두 그림을 완성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림이 스스로 정한 기준에 이를 때까지 거듭 손보는 태도와 일치한다. 완벽주의

현대 학자들은 베네치아에 가족 중심의 공방이 있었고, 조수들이 겨우 스케치만 된 캔버스를 완성하거나 티치아노의 성공작 구도를 복제했다고 설명한다. 안토니오 파올루치가 인용한 17세기 전기 작가 카를로 리돌피에 따르면 티치아노는 제자들이 가장 훌륭한 작품을 베낄 수 있도록 열쇠를 작업실에 두고 외출했고, 돌아와서는 그 복제품을 '자기 손으로' 마무리했다.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는 이런 작업의 처음과 끝에 그가 관여해 직접 그린 것과 공방 작업을 가르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반복되는 작업은 조수에게 맡기되 시작과 마무리에는 자신의 손길을 남긴 방식과 일치한다. 협업 성향


전환점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따르면 티치아노는 155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양식과 기법을 근본적으로 고쳐, 훨씬 자유로운 붓질과 덜 묘사적인 현실 표현을 발전시켰다. 1560년대 말에서 1570년대 초에는 예술을 추상의 가장자리까지 밀고 나갔다. 대부분 그가 여든 중반일 때 그려진 『악타이온의 죽음』에서는 때로는 손가락으로 문지른 덧칠을 더하고, 화면의 여러 부분을 서로 다른 완성 단계로 남겨 두었다.

말년에도 자신의 기법을 계속 바꾸려는 자세와 일치한다. 실험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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