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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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tao, Small Self-Portrait Planting a Tree, 1674. National Palace Museum, Taipei, public domain · Shitao, 'Small Self-Portrait Planting a Tree' (also called Master Shi Planting Pines), light-colour handscroll on paper, dated 1674 on his own inscription, National Palace Museum, Taipei (object number Zeng-hua 000114N000000000; donated by the wife of Luo Jialun). The museum catalogues the seated figure as a self-portrait of the artist when he was about thirty-three. The file is a reproduction of the figure detail (1513 x 1667) downscaled to 1089 x 1200 with no upscaling; it comes from a printed reproduction and shows print grain. The museum record offers its own images under open licences (CC0 at 1 megapixel, CC BY 4.0 at 6 megapixels); the painting itself is long out of copyright. · Public domain (a 1674 painting by an artist who died in 1707; the holder's own digital images are offered under CC0 and CC BY 4.0)

화가 · 근세

석도

1642–1707

주요 업적 분야

예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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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업적

청나라 초기의 화승(畫僧)으로 본명은 주약극이다. 산수와 과일·꽃, 난초와 대나무를 자유로운 붓질과 촉촉한 먹으로 그렸고,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은 이를 그가 독자적인 양식을 만들라고 주창한 것과 연결해 설명한다.

화론서 『고과화상화어록』을 썼다. 첫 장은 그림의 법이 하나의 획에서 나온다고 말하며, 『청사고』는 그가 화론 한 권을 지었다고 기록한다.

1696년 이후 양저우에 정착해 직업 화가로 살았다. 1795년의 지역 기록은 완스 정원의 가산(假山)을 그의 솜씨로 전하며, 『청사고』는 그를 곤잔과 나란히 '두 석(二石)'으로 꼽는다.


삶의 장면들

리더우의 1795년 『양저우화방록』은 그가 산수와 화훼화 외에 가산(假山) 쌓기에도 능했으며, 위씨 집안의 완스 정원이 그의 손에서 나와 지금도 칭송받는다고 적었다.

이는 화가의 안목을 이웃한 공예 분야에까지 적용한 모습과 일치한다. 분야 횡단성

그는 화론서에서 어느 대가의 화풍을 그대로 따르는 화가는 그 대가의 남은 음식을 먹는 셈이라고 썼고, '나는 나이며 나에게는 나의 것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개성적인 양식을 고집하는 그의 자기 진술과 일치하며, 이는 외부의 관찰이 아니라 그 자신의 주장이다. 창의적 독창성


전환점

그는 여러 지방을 떠도는 승려로 살다가 승려 생활을 버리고,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 따르면 직업 화가로 생계를 꾸렸으며 1696년 이후 양저우에 정착했다.

이는 화가로 일하기 위해 한 삶의 방식에서 다른 방식으로 옮겨 간 모습과 일치한다. 적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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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