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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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 Dew-Smith (1848-1903), photograph of Mary H. Kingsley, published in Edward Clodd, Memories (1916), facing p. 74;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 Edward Clodd, Memories (London: Chapman and Hall, 1916), plate facing p. 74, via Internet Archive (memoires00cloduoft) and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탐험가 · 19세기

메리 킹즐리

1862–1900

주요 업적 분야

역사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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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두 번째 서아프리카 여행(1894년 12월~1895년 11월)에서 킹즐리는 프랑스령 콩고의 오고웨강을 카누로 거슬러 올라 은졸레 위쪽의 급류 지대에 들어갔고, 이어 람바레네에서 렘브웨강까지 지도에 거의 없던 팡족 지역을 육로로 가로질렀다. 귀국하기 전에는 카메룬산(뭉고마로베)에도 올랐다.

그녀는 오고웨강에서 대영박물관을 위해 어류, 파충류, 곤충을 채집했다. 1896년 박물관의 동물학자 앨버트 귄터는 그녀의 수집품에서 어류 약 65종과 파충류 18종을 보고하고 새로운 어류 3종에 그녀의 이름을 딴 kingsleyae라는 학명을 붙였으며, 급류에서 카누가 자주 뒤집혔는데도 표본이 매우 좋은 상태로 도착했다고 적었다. 한 현대 어류학자는 이 수집품을 가봉 어류 연구에 대한 중요한 기여로 평가했다.

그녀의 『서아프리카 여행기』(1897)는 두 차례 여행의 기록에 서아프리카 종교('페티시')에 관한 장과 교역에 관한 부록을 더한 책이었고, 이어 『서아프리카 연구』(1899)가 나왔다. 프린스턴의 지리학자 윌리엄 리비는 『사이언스』 서평에서 책의 산만한 구성과 가벼운 어조를 비판하면서도 페티시에 관한 장은 '가치 있는 기여'라고 평가했다.


삶의 장면들

킹즐리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1895년 9월 26일 그녀는 날씨가 나빠지는 가운데 마지막 동행 두 사람이 멈춘 뒤에도 카메룬산 정상을 향해 계속 올라갔고, 안개와 몰아치는 비 속에서 혼자 정상의 돌무더기에 닿았다. 그녀는 일행을 위험에 빠뜨려도 되는지 망설였으며, 안개 때문에 보려고 했던 전망을 놓쳤다고 적었다.

혼자서라도 계속 가기로 한 선택은 이 프로필의 높은 위험 감수 성향 점수와 맞아떨어진다. 일행을 위험에 노출하는 데 대해 그녀 스스로 품었던 의문은 이 점수가 양면적인 것으로 표시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위험 감수

1896년 『서아프리카 여행기』를 준비하던 중 한 과학자 교정자가 그녀의 표현 일부를 고쳤는데, 그중에는 그녀가 틀렸다고 본 포르카도스 사주의 수심도 있었다. 전기 작가 스티븐 귄이 인용한 출판인 조지 맥밀런 앞 편지에서 그녀는 '사실을 정직하게 관찰하는 사람'으로서 잃을 평판이 있다며 고친 내용을 그대로 내는 것을 거부했다.

이 일화는 표본을 신중하게 골랐다는 귄터의 평가와 함께 그녀의 세부 지향성을 보여 주는 근거가 된다. 다만 편지 자체는 그녀 자신의 진술이다. 디테일 지향


전환점

1892년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킹즐리는 아버지가 해 오던 초기 종교와 법에 관한 연구를 이어 가기 위해 서아프리카를 택했다. 두 번째 여행을 앞두고 대영박물관의 앨버트 귄터가 그녀가 가는 강의 어류를 채집해 보라고 권했고, 그녀는 1894년 12월 박물관에서 받은 채집 장비를 갖추고 길을 떠났다.

'물고기와 페티시'를 함께 다룬 이 여행은 이 프로필이 점수로 매긴 호기심의 한 예다. 한 번의 여행을 자연사 연구와 종교 연구에 모두 바친 것이다.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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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