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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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by the Atelier Leopold Bude, Graz, taken between 1870 and 1885; collection of the Kunstbibliothek, Staatliche Museen zu Berlin · Carte-de-visite photograph from the Atelier Leopold Bude, Graz, Staatliche Museen zu Berlin, Kunstbibliothek (object 1992,32/003a.066), catalogued with the title 'Ludwig Bolzmann' · Public domain (marked Public Domain Mark 1.0 by the holding museum; photographer's studio active in the 19th century)

물리학자 · 19세기

루트비히 볼츠만

1844–1906

주요 업적 분야

과학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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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1872년 볼츠만은 빈 과학아카데미 회보에 「기체 분자 사이의 열평형에 관한 추가 연구」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는 그의 이름이 붙은 볼츠만 방정식과 H-정리가 들어 있으며, 그는 기체가 맥스웰이 1860년에 가정한 속도 분포로 나아가는 과정과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우핑크는 이 논문을 그의 가장 중요한 논문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1877년 그는 「열의 역학 이론의 제2법칙과 확률 계산의 관계에 대하여」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평형은 가장 많은 미시 상태로 실현되는 가장 확률 높은 거시 상태로 다뤄지며, 평형을 향한 진행은 덜 확률적인 상태에서 더 확률적인 상태로의 이동이 된다. 엔트로피 관계를 S = k log W로 쓴 것은 훗날의 플랑크이며,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은 볼츠만이 이 식을 그 형태로 쓴 적이 없다고 지적하고, 이 논문이 가역성 반론을 얼마나 피했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라고 전한다.

1896년과 1898년에 나온 두 권짜리 『기체 이론 강의』는 뮌헨과 빈에서의 강의에서 비롯되었다. 서문에서 그는 무엇보다 클라우지우스와 맥스웰의 업적을 알기 쉽게 소개하려 했고 자신의 논문에도 얼마간 지면을 주었으며, 1894년 옥스퍼드 영국과학진흥협회 모임의 토론과 이후 『네이처』에 실린 편지들에서 많이 배웠다고 밝힌다. 우핑크는 이 책을 1890년대 통계물리학 연구의 주요 사건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1879년 요제프 슈테판은 뜨거운 물체가 내보내는 복사 에너지가 온도의 네제곱에 비례한다고 경험적으로 밝혔고, 1884년 볼츠만은 이 법칙이 열역학에서 유도됨을 보였다. 그래서 이 법칙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붙었다. 그보다 앞선 1873~74년 그라츠에서 그는 난방이 되지 않는 꼭대기 층 방에서 유전체에 관한 정밀한 실험 일곱 건을 수행해 맥스웰 전자기 이론의 예측을 검증했고, 에른스트 마흐는 그를 따라가기 어려운 실험가라고 평했다.


삶의 장면들

1895년 뤼베크에서 열린 독일 자연과학자 모임에서 빌헬름 오스트발트는 자연 현상의 비가역성이 그것을 역학 방정식으로 기술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 볼츠만은 그 전해 6월 오스트발트에게 영국과학진흥협회식 토론을 일으킬 생각이라고 편지에 썼고, 펠릭스 클라인이 그를 거들었다. 현장에 있던 아르놀트 조머펠트는 이 논쟁을 날랜 투우사와 황소의 싸움에 비기며 이번에는 황소가 이겼다고 썼고, 당시 젊은 수학자들이 모두 볼츠만 편이었다고 적었다.

주요 반대자와의 공개 토론을 일부러 일으키려 한 것은 대립을 마다하지 않는 태도와 부합한다. 같은 자료들은 마흐 등이 그의 논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고 보았다고도 전하므로, 이 태도는 양면적이었다. 갈등 감내

회플레히너에 따르면 볼츠만은 이미 정교수였음에도 키르히호프와 헬름홀츠에게 배우러 1870년 하이델베르크로, 1871년 베를린으로 갔고, 첫 만남에서 두 사람의 연구에 있는 오류를 지적해 그곳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서술은 편지를 직접 인용하지 않은 역사가의 요약이다.

당대 최고 물리학자 두 사람에게 첫 만남에서 연구의 오류를 알린 것은 권위로부터 지적으로 독립적인 태도와 부합한다. 다만 이는 한 역사가의 서술이다. 독립적 사고


전환점

1876년 그의 옛 스승이자 친구인 요제프 로슈미트는 순수하게 역학적인 정리로는 H-정리가 제2법칙에 대해 주장하는 것처럼 한 방향의 시간 비대칭적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우핑크에 따르면 볼츠만은 접근의 토대를 다시 생각했고 1877년 개념적으로 다른 확률 기반의 분석을 내놓았다. 그것이 반론을 피하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이후 그는 앙상블과 에르고딕 가설로 돌아갔고, 1895년에는 자신의 정리와 제2법칙이 확률에 관한 진술일 뿐이라고 밝혔다.

동료의 반론을 받고 논증을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세운 것은 비판을 받으면 입장을 고칠 수 있는 태도와 부합한다. 다만 체르멜로 같은 비판자에 대한 이후의 답변은 비꼬는 어조였다고 평가된다. 입장 수정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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