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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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 unknown; plate in Kokushi Shozo Taisei (Tomibunkan Shoten, 1941); National Diet Library, Japan, Portraits of Modern Japanese Historical Figures · Photograph of Kuroda Seiki (photographer not named) printed as a captioned plate, with the caption 黒田清輝 and the page number 380, in the biographical picture book Kokushi Shozo Taisei (Tokyo: Tomibunkan Shoten, 1941), digitised in the National Diet Library Digital Collections (item 1042979, rights status 'out of copyright') and shown on the library's site 'Portraits of Modern Japanese Historical Figures'. The image is the site's 521 x 741 pixel file, used as is: not resized and not upscaled. · Public domain: photograph first published in Japan in 1941 (published before 1958, so its Japanese copyright had expired and was not restored in the United States); National Diet Library item record marks it out of copyright

화가 · 20세기

구로다 세이키

1866–1924

주요 업적 분야

예술문화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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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프랑스에서 약 9년간 라파엘 콜랭에게 그림을 배운 그는 1893년 밝은 야외광 화풍을 안고 일본으로 돌아왔으며, 일본 근대 서양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1896년 구메 게이이치로와 함께 하쿠바카이를 결성해 1911년까지 열세 차례 전시를 열었고, 도쿄미술학교의 새 서양화과를 이끌게 되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2차 세계대전 중 소실된 〈아침 화장〉(1893), 1897년의 〈호반〉, 그리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일본 출품자 가운데 가장 높은 은상을 받고 지금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누드 3부작 〈지·감·정〉이 있다.


삶의 장면들

1895년 교토에서 〈아침 화장〉이 전시되자 신문들은 이 누드화가 풍속을 해친다고 비난했고, 그는 공개적으로는 침묵했지만 구메에게 보낸 사신에서 그 그림과 운명을 같이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썼다.

이는 공개 비난 속에서도 지면 논쟁 없이 자신의 작품을 지킨 모습과 일치한다. 갈등 감내

1894년 그와 구메는 한 화숙을 넘겨받아 덴신도조로 이름을 바꾸고, 사진이나 판화를 베끼는 대신 석고상과 살아 있는 모델만을 목탄으로 그리도록 규칙을 정했다.

이는 파리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교육 방법을 만든 모습과 일치한다. 계획 지향


전환점

1886년 파리에서 만난 화가들의 권유를 받은 그는 양부에게 그림 공부를 하기로 굳게 결심했다고 편지를 보내고 이튿날 라파엘 콜랭의 아틀리에에 들어갔으며, 1887년 법학 공부를 그만두었다.

이는 가족의 기대를 거스르고 진로를 바꾸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모습과 일치한다. 위험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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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