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Inside
← 전체 인물 보기

Henry William Pickersgill (1782-1875), George Stephenson, c.1845, oil on canvas, 111.8 x 87 cm,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NPG 410); public domain (artist died 1875); file as hosted on Wikimedia Commons, not resized. ·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NPG 410), via Wikimedia Commons (Art UK image) · Public domain

공학자 · 19세기

조지 스티븐슨

1781–1848

주요 업적 분야

공학기술산업혁신

아직 성격 매칭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 기록된 근거가 성격 모델 전체를 다루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페이지의 다른 모든 내용은 자유롭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핵심 특성


주요 업적

그는 1825년 9월 27일 개통된 스톡턴-달링턴 철도와 1830년 9월 15일 개통된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의 기사장으로, 증기기관차로 열차를 끄는 초기 공공 철도 두 곳을 건설했다. 리버풀-맨체스터 선은 챗 모스 습지를 가로질렀다. 두 철도 모두 탄광 궤도에서 이미 쓰이던 4피트 8.5인치 궤간으로 깔았고, 이 궤간이 훗날 표준궤가 되었다.

그는 1814년부터 킬링워스 탄광에서 기관차를 만들고 개량했으며, 1823년에는 훗날 로버트 스티븐슨 사로 발전한 뉴캐슬 공장을 공동 설립했다. 아들 로버트의 지휘 아래 이 공장에서 만든 로켓호는 1829년 10월 레인힐 시험에서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의 상금 500파운드를 받았다. 다관식 보일러는 철도 회사 회계 담당자 헨리 부스의 착상으로 알려져 있어, 이 성과는 여럿이 함께 이룬 것이다.

그는 1815년 10월과 11월 킬링워스 탄광에서 좁은 관을 통해서는 불꽃이 전파되지 않는다는 원리에 기댄 광부용 안전등 세 가지를 시험했고, 이 형식은 '조르디 램프'로 알려졌다. 험프리 데이비도 같은 가을에 자신의 안전등을 발표해 두 사람 사이의 선취권이 논란이 되었다. 1816년 데이비 지지자들은 그에게 2,000파운드를, 1818년까지 스티븐슨 지지자들은 스티븐슨에게 1,000파운드를 모아 주었다.


삶의 장면들

리버풀-맨체스터 선이 지나야 했던 챗 모스는 면적이 약 12제곱마일에 이르는 이탄 습지다. 스마일스에 따르면 첫 제방은 몇 주 동안 거듭 가라앉았고, 이사회는 공사를 계속할지 정하려고 습지 위에서 회의를 열었다. 스티븐슨은 1837년 버밍엄 만찬에서 다른 기술자들의 의견도 구해 본 상태였고, 이사들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계속하도록 허락했으며, 자신은 결과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1830년 1월 1일 로켓호가 끄는 첫 시험 열차가 이 습지를 건넜다.

이사들의 의심과 그 자신의 확신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스마일스가 전한 1837년의 회고에 의존하므로, 이 일화는 이 프로필의 끈기 점수와 어울리는 한 가지 사례로 보아야 하며, 그가 늘 한결같았다는 확정적 척도로 읽어서는 안 된다. 끈기

1815년 10월 21일 스티븐슨은 첫 안전등을 들고 킬링워스 탄광의 한 갱도로 들어갔다. 그곳은 분출구에서 나오는 가스로 공기를 일부러 탁하게 만들려고 판자를 둘러 둔 곳이었다. 하급 감독 존 무디는 불 켜진 양초를 들이면 폭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니콜라스 우드와 무디는 시야 밖으로 물러섰고, 스티븐슨은 불을 켠 등을 들고 분출구 쪽으로 나아갔다. 불꽃은 커졌다가 꺼졌을 뿐 가스에 불이 붙지는 않았다. 무디는 1817년 위원회에서 같은 취지로 증언했고, 훗날 데이비의 전기 작가 패리스는 이 첫 안전등이 건전한 설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경험 많은 동료의 경고를 듣고도 시험해 보지 않은 안전등을 들고 가스 쪽으로 나아간 일은 이 프로필의 보통 수준 위험 감수 점수와 어울린다. 다만 그가 리버풀 이사들에게는 낮은 속도만 약속하고 견적이 너무 낮아 보이는 노선은 맡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어, 이 프로필은 그 점수를 높게 잡지 않았다. 위험 감수


전환점

1821년 말 당시 킬링워스 탄광의 기관 담당자였던 스티븐슨은 니콜라스 우드와 함께 달링턴으로 가서, 스톡턴-달링턴 철도의 발기인 에드워드 피스에게 자신을 기사로 써 달라고 청하고 말보다 기관차를 쓰자고 설득했다. 그는 1822년 초 기사로 임명되었다. 그때까지 그의 기관차는 사설 탄광 선로에서만 달렸으나, 이 임명으로 그는 공공 철도의 기사가 되었고, 약 4년 뒤에는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의 기사로도 임명되었다.

먼저 제안을 받기를 기다리지 않고 초청 없이 발기인을 직접 찾아간 일은 이 프로필의 주도성 점수와 어울린다. 다만 이 방문의 세부는 스마일스가 전한 피스의 회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선제적 행동력


비슷한 인물

전체적인 프로필이 이 사람과 닮은 사람들이에요.

카를 융

의사1875–1961
87% 프로필 일치도

반대 프로필

경쟁 상대가 아니라, 살펴볼 만한 다른 프로필 형태예요.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