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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en Museum Online Sammlung (inv. 103817), collotype by Max Jaffe, published by Karl Konig, after Wilhelm August Rieder's 1825 watercolour portrait of Schubert made from life; the Wien Museum page states the image may be reused under CC0 and asks that the author, photographer and Wien Museum be named as source · Wien Museum Online Sammlung, inventory 103817: 'Franz Schubert (1797-1828), Komponist (Reproduktion eines Aquarells von Wilhelm August Rieder von 1825)', collotype (Lichtdruck) c. 1870-1900, published by Karl Konig, Vienna, printed by Max Jaffe, after Wilhelm August Rieder (1796-1880) · CC0 1.0 (Wien Museum object page); the underlying watercolour (1825) and the print (c. 1870-1900) are in the public domain

작곡가 · 19세기

프란츠 슈베르트

1797–1828

주요 업적 분야

예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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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슈베르트는 열일곱 살이던 1814년 10월 괴테의 시에 붙인 가곡 「물레 잣는 그레트헨」을, 1815년 겨울에는 발라드 「마왕」을 썼다. 그로브는 1815년 한 해에만 가곡 137곡을 센다. 빈의 주요 출판사 디아벨리와 하슬링거가 거절한 뒤 1821년 「마왕」은 존라이트너 모임의 예약 구독자들이 비용을 대어 판각·출판되었고, 성악가 요한 미하엘 포글이 1821년 3월 7일 빈에서 이 곡을 공개 연주했다.

1823년 그는 빌헬름 뮐러의 시 20편을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로 작곡했고(1824년 작품번호 25로 출판), 1827년 2월에는 뮐러의 연작시 「겨울 나그네」 24곡의 작곡에 착수했다. 앞의 12곡에는 그달의 날짜가 적혀 있고 제2부는 같은 해 후반에 완성했다. 하슬링거는 1828년 1월 제1부를 출판했다. 그로브는 프란츠 라흐너가 슈베르트의 부탁으로 「겨울 나그네」 가곡 여섯 곡을 출판사에 가져가 6굴덴을 받아 왔다고 전한다.

슈베르트는 1822년 10월 30일 나단조 교향곡을 쓰기 시작해 두 악장을 완성했는데, 이것이 '미완성 교향곡'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자필 악보는 안젤름 휘텐브레너와 함께 그라츠에 남아 있다가 1865년 요한 헤르베크의 지휘로 빈에서 연주되었고 1867년 출판되었다. 1828년 3월에는 마지막 교향곡인 다장조 교향곡(자필 악보 218쪽)에 착수했다. 빈 악우협회에서 파트보를 필사하고 몇 차례 리허설을 했으나 너무 길고 어렵다는 이유로 철회되었으며, 두 교향곡 모두 생전에 연주되지 못했다(그로브).

그의 실내악으로는 클라리넷, 호른, 바순과 현악기를 위한 팔중주(1824년 2~3월, 아마추어 클라리넷 연주자 트로이어 백작을 위해 작곡), 현악 사중주 라단조(1826년 1월 29일 첫 연주), 피아노 삼중주 두 곡(1827년 10~11월), 1828년의 현악 오중주 다장조가 있으며, 그로브는 이 오중주를 슈베르트 최고의 실내악일 뿐 아니라 이 장르 최고 작품 중 하나로 평했다. 1828년 3월 26일 그는 자기 작품만으로 구성한 유일한 공개 연주회를 열었고, 음악협회 홀은 사람들로 가득 찼으며 그로브에 따르면 약 800굴덴의 수입을 올렸다.


삶의 장면들

친구 요제프 폰 슈파운에 따르면, 1815년 말의 어느 오후 슈파운이 아버지 집의 슈베르트 방에 찾아갔을 때 그는 괴테의 「마왕」에 흥분해 있었다. 슈베르트는 시를 두 번 읽은 뒤였고 슈파운은 그가 곡을 적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반주는 금세 채워졌고 저녁에 그는 옛 합창학교인 콘빅트에서 이 곡을 불렀는데, '아버지, 아버지, 그가 나를 붙잡아요' 대목의 화성에 청중이 얼굴을 찡그렸고 화성학 교사 루지치카가 이를 설명해 주었다. 크라이슬레와 그로브 모두 이 이야기를 슈파운에게서 옮겨 적었으며 두 번째 목격자는 없다.

한나절에 완성된 곡을 써낸 것은 빠른 실행 속도와 부합한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하지만 한 친구의 증언에 의존한다. 실행 속도

1823년 슈베르트는 5월 25일 3막 오페라 「피에라브라스」를 쓰기 시작해 5월 31일까지 제1막 총보를 끝냈고, 10월 1일까지 약 천 쪽에 달하는 세 막 전체를 완성했다. 1824년 초 그는 궁정 오페라 극장이 이 작품을 퇴짜 놓았음을 알게 되었고, 요제프 쿠펠비저가 쓴 대본이 이유로 지목되었다. 1824년 3월 쿠펠비저의 형제인 화가 레오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오페라 두 편을 헛되이 작곡했다고 썼고, 같은 편지에서 팔중주와 사중주는 대교향곡으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오페라는 생전에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거절당한 오페라에서 곧바로 교향곡으로 가는 단계라고 설명한 실내악으로 방향을 돌린 것은 끈기와 부합한다. 그로브는 그가 약한 대본을 거듭 골랐다는 점도 함께 지적한다. 끈기


전환점

1816년 4월 당시 아버지 학교의 보조 교사였던 슈베르트는 살리에리와 학교 감독관 슈펜두의 추천서를 갖추어 라이바흐에 새로 생긴 음악 교사직에 지원했으나, 그 자리는 살리에리의 추천으로 야코프 샤우플에게 돌아갔다. 1816년 가을 그의 가곡을 흠모하던 대학생 프란츠 폰 쇼버가 그를 자기 숙소로 데려갔고, 슈베르트는 아버지의 학교를 떠났다. 그로브는 그가 시도했던 몇몇 개인 레슨도 곧 그만두었다고 덧붙인다. 몇 해 뒤 그는 궁정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사양했고 1826년 궁정 부악장직에는 지원했으나 떨어졌다.

정해진 봉급이 있는 교직을 떠나 친구들 곁의 불안정한 생활을 택하고, 요제프 휘텐브레너의 전언대로 자유를 지키려고 궁정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사양한 것은 안정된 수입을 희생하더라도 자율성을 크게 원하는 성향과 부합한다. 자율성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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