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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e de Champaigne, Saint Augustine, circa 1645,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M.88.177, Gift of The Ahmanson Foundation · Saint Augustine, oil on canvas by Philippe de Champaigne, circa 1645,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accession M.88.177 (Gift of The Ahmanson Foundation). The painter died in 1674, so the painting is public domain by age, and the museum's collection record flags the image as public domain and offers it for download under its terms for public-domain images. A posthumous imagined image made more than a thousand years after the sitter's death, so shown as a later depiction and not as a likeness. Original museum image 3216 x 4096 pixels, downscaled to 942 x 1200 with no cropping and no upscaling. · Public domain (artwork by age; museum public-domain image)

신학자 · 고대

아우구스티누스

354–430

로마 제국

주요 업적 분야

문화문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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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로마령 아프리카 히포의 주교(약 396~430년)로서 『고백록』과 『신국론』을 썼으며, 이는 그를 서방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가의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현존하는 그의 저작은 책 약 100권, 서한 약 300통, 설교 약 600편이며, 만년에는 『재고록』에서 자신의 저술을 직접 검토했다.

마니교도, 도나투스파, 펠라기우스파와의 논쟁에서 중심적인 목소리를 냈고, 아프리카 동료 주교들과 함께 418년 펠라기우스주의 단죄를 이끌어냈다.


삶의 장면들

도나투스파 반박 활동에서 그는 글을 모르는 신자들도 분열의 오류라고 본 점을 외울 수 있도록 297행의 노래를 지었고, 이후 도나투스파에 대한 국가의 강제력을 옹호했는데 후대 비평가들은 이를 비판해 왔다.

이는 청중에 맞춘 지속적인 공개 논쟁에 기꺼이 나서는 태도와 부합하며, 그 결과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갈등 감내

경력 후반에 그는 자신의 저술을 연대순으로 비판적으로 검토한 『재고록』을 썼고, 새로 발견된 서한에서는 자신의 글을 성경처럼 대하지 말라고 독자들에게 경고했다.

이는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되짚고 수정하는 습관과 부합한다. 입장 수정 성향


전환점

391년 히포에서 본인의 뜻과 달리 사제로 서품되었다고 전해지며, 약 396년 그 지역 주교직을 이어받아 수사학 교사와 철학적 은거 생활에서 신자 공동체와 그 논쟁을 이끄는 자리로 옮겨 갔다.

이는 학문적 생활에서 공적인 사목과 논쟁 활동으로의 전환과 부합한다. 설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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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