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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hton Friis (1871-1939), 'Alfred Wegener', pencil portrait signed and dated 1913; published in J. P. Koch, Durch die weisse Wueste, Julius Springer, Berlin 1919; public domain (artist died 1939) · Achton Friis, pencil portrait of Alfred Wegener, plate in J. P. Koch, Durch die weisse Wueste (Berlin: Julius Springer, 1919), via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과학자 · 20세기

알프레트 베게너

1880–1930

주요 업적 분야

과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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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베게너는 1912년 1월 6일의 강연과 저서 『대륙과 해양의 기원』(초판 1915년, 제4판 1929년)에서, 대륙들이 한때 하나로 붙어 있다가 갈라져 이동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근거는 해안선의 일치, 서로 대응하는 화석과 암석 구조, 과거의 기후였다. 대륙을 움직이는 힘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한 원인이 되어 대다수 지질학자는 이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60년경 해저 확장이 발견된 뒤에야 대륙의 이동은 판구조론의 틀 안에서 인정받았다.

베게너는 그린란드 탐험에 네 차례 참가했다. 1906~08년 덴마크 탐험에서는 연과 계류 기구로 극지 대기를 체계적으로 처음 관측했고, 1912~13년에는 코흐가 이끈 탐험대와 함께 빙상을 횡단했다. 그가 이끈 1929년 예비 탐험에서는 반사 지진파로 빙상 두께를 처음 측정했다. 1930~31년 독일 그린란드 탐험은 빙상을 가로지르는 관측소 세 곳을 두는 계획으로, 그는 이 탐험을 이끌다 1930년 11월에 숨졌다. 역사가들은 이 탐험의 연구 계획이 이후 국제 탐험의 기준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베게너는 상층 대기를 연구한 기상학자였다. 1906년에는 형 쿠르트와 함께 약 52시간 동안 기구를 띄워 세계 기록을 세웠고, 1911년에 낸 교재 『대기의 열역학』은 NASA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에서 표준 교재가 되었다. 장인 블라디미르 쾨펜과 함께 쓴 『지질 시대의 기후』(1924)는 『신독일인명사전』이 근대 고기후학을 세운 책으로 평가한다.


삶의 장면들

1918~19년 겨울 베게너는 마르부르크에서 달의 크레이터를 재현하는 충돌 실험을 했고, 1921년 저서에서 당시의 통설과 달리 그것이 충돌의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1927년 9월에는 에스토니아 사레마 섬의 살(칼리) 분화구에서 측정 조사를 수행했다. 『신독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이후 이반 라인발트가 그곳에서 지구 밖에서 온 철을 발견함으로써 충돌 분화구임이 확정되었다.

실험실 모형 실험 뒤에 현장 측정 조사가 이어진 이 과정은 이 프로필의 실험성 점수와 맞닿아 있다. 논란이 된 생각을 지면에서 논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검증하려 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실험 성향

1930년 9월 독일 그린란드 탐험대는 일정이 약 38일 늦어졌고, 빙상 한가운데 있는 아이스미테 관측소에는 물자의 일부만 옮겨 둔 상태였다. 9월 21일 베게너는 프리츠 뢰베와 그린란드인 13명과 함께 서해안을 출발해 그곳으로 물자를 나르러 갔다. 그린란드인 대부분은 도중에 돌아갔고, 베게너와 뢰베, 라스무스 빌룸센만 10월 30일 아이스미테에 도착했다. 11월 1일 쉰 번째 생일에 베게너는 빌룸센과 함께 되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그는 가는 도중 아마 11월 중순에 숨졌고, 수색대가 1931년 5월 12일 그의 무덤을 찾아냈다.

늦은 계절에 물자 수송대를 직접 이끌기로 한 선택은 이 프로필에서 나타나는 적당한 수준의 신체적 위험 감수 성향을 보여 주는 한 예다. 다만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 탐험을 다룬 2000년의 역사 연구는 대장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잘못된 판단을 했으며 어느 한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위험 감수


전환점

1912년 1월 6일 마르부르크의 강사이자 31세 기상학자였던 베게너는 프랑크푸르트의 지질학회에서 대륙 이동 가설을 처음 발표했다. 장인 블라디미르 쾨펜은 기상학자가 외부인으로서 지질학에 뛰어들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흘 뒤 마르부르크에서 두 번째 강연을 했고, 4월부터 『페터만 지리학 보고』에 긴 논문이 실렸다. 그는 1915년, 1920년, 1922년, 1929년의 책 개정판에서 이 주제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은 기상학과 극지 연구뿐 아니라 논쟁적인 지질학 문제와도 연결되었다.

스승이자 장인의 경고를 받고도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의 전문가들 앞에서 그 생각을 발표한 일은 이 프로필의 독립적 사고 점수와 맞닿아 있다. 독립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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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