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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Stereoscopic and Photographic Company, c. 1895 (first published in Borderland Magazine, April 1896) · London Stereoscopic and Photographic Company studio photograph, first published in Borderland Magazine, April 1896, via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박물학자 · 19세기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1823–1913

주요 업적 분야

과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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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월리스는 1854년부터 1862년까지 동남아시아에서 전문 표본 수집가로 일했다. 그는 사라왁 출신의 알리를 비롯해 시기에 따라 구성이 바뀌는 현지 조수 팀과 함께 다니며 여러 차례 탐사를 했고, 1869년에 이 여행을 기록한 《말레이 제도》를 출간했다.

월리스는 1858년 2월 테르나테에서 쓴 글을 다윈에게 보내면서, 다윈이 충분히 새롭고 흥미롭다고 판단하면 찰스 라이엘에게 전해 달라는 뜻을 밝혔다. 1858년 7월 1일 런던 린네 학회는 이 글을 다윈의 글 발췌문과 함께 낭독했는데, 두 사람 모두 그 자리에 없었고 월리스는 몰루카 제도에 있었다.

1867년 2월 다윈은 헨리 월터 베이츠의 조언에 따라 일부 애벌레가 왜 화려한 색을 띠는지 월리스에게 물었다. 월리스는 눈에 띄는 색이 새들에게 맛이 없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답하며 실험을 제안했고, 존 제너 위어가 1867년과 1868년 여름에 그 실험을 수행했다.


삶의 장면들

1854년 2월 왕립지리학회 사무총장 헨리 노턴 쇼는 외무부에 편지를 보내, 월리스가 정부의 우편선 여객 제공 제안을 받아들이겠으며 그의 어린 조수도 포함되기를 바란다고 전하고, 목적지를 오스트레일리아 대신 싱가포르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P&O 증기선편이 마련되어 월리스와 십대 소년 찰스 앨런을 태운 배가 1854년 3월 4일 사우샘프턴을 출항했다.

이 일화는 1860년 앨런과 맺은 협약에서도 나타나듯, 제도적 인맥과 위임된 수집 작업을 현장 조사의 실질적 수단으로 바꾸는 경향과 일치한다. 자원 활용 성향

1869년 3월 월리스는 다윈에게 곧 나올 《쿼털리 리뷰》 기고문에서 처음으로 자연선택의 힘에 한계를 두겠다고 알렸고, 4월 14일 다윈은 인간에 관한 대목에 '크게 이견'이 있으며 '추가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을 끌어들일 필요를 보지 못한다고 답했다. 다윈은 동시에 그 글에 '무척 흥미를 느꼈다'고 하며 월리스의 자연선택 설명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고 평했다.

이 주고받음은 월리스가 가까운 동료와 다른 입장을 유지한 사례를 보여 준다. 그 입장이 옳았는지는 여기서 평가하지 않는다. 독립적 사고


전환점

1852년 월리스가 아마존에서 영국으로 돌아오던 배에 불이 나 개인 수집품 대부분이 소실되었는데, 런던의 대리인 새뮤얼 스티븐스가 그 수집품을 약 200파운드에 보험에 들어 둔 상태였다. 영국에 돌아온 지 약 18개월 뒤 그는 정부 지원 항해편으로 다시 표본 수집을 위해 떠났고, 이번에는 동남아시아로 향했다.

이 시간 순서는 큰 손실 뒤에도 현장 조사로 돌아간 태도와 일치하지만, 자료는 그의 속마음을 설명하지 않으므로 해석은 날짜순으로 확인되는 사실의 범위에 머문다. 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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