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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raving by Gaetano Bonatti ('Gaet. Bonatti inc.') after a drawing by Giovita Garavaglia (1790-1835), published before 1834; digitised from the Edgar Fahs Smith Image Collection, University of Pennsylvania. Penn Libraries rights statement: No Copyright - United States. · Wikimedia Commons file 'Volta A.jpg' (original 1896x1776, downsized to 1600x1499 without upscaling), from the Edgar Fahs Smith Image Collection, University of Pennsylvania (Penn Libraries catalogue record 'Alessandro Volta : Da un disegno fatto sul vero da Giovita Garavaglia', engraved by Gaetano Bonatti) · Public domain (engraving made before 1834; both named artists died before 1836, so life-plus-100 has long expired worldwide; tagged PD-old-100 on Commons)

물리학자 · 근세

알레산드로 볼타

1745–1827

주요 업적 분야

과학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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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특성


주요 업적

볼타는 1800년 6월 26일 왕립학회에서 낭독된 조지프 뱅크스 경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금물에 적신 종이나 가죽을 사이에 끼운 은판과 아연판을 번갈아 쌓은 기둥과, 은과 아연으로 된 활 모양의 도선으로 소금물 잔들을 이은 변형 장치를 설명했다. 왕립학회의 요약은 이 장치가 끊김 없이 작동하며 거듭 충격을 준다고 전하고, 볼타가 이를 시끈가오리의 발전 기관에 견주었다고 밝힌다.

루이지 갈바니가 1791년 개구리 실험을 발표한 뒤 볼타는 그 실험을 되풀이하고 넓혔으며, 1793년에는 경련의 대부분이 동물 자체의 전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금속이 닿을 때 생기는 약한 전기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갈바니와 조카 조반니 알디니는 동물 전기를 옹호했고, 카라도리의 1817년 역사서에 따르면 물리학자들은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1892년의 인물 소묘는 볼타 전퇴가 이 연구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볼타는 1776년 11월 카를로 캄피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조레 호수와 코모 호수, 그리고 많은 연못과 도랑의 바닥을 휘저으면 가연성 공기를 모을 수 있으며 이것이 푸른 불꽃을 내며 탄다고 썼다. 캄피는 이보다 앞서 산 콜롬바노 부근에서 기포가 올라오는 가스 샘을 보고한 바 있다. 볼타의 편지들은 1777년 밀라노에서 인쇄되었고 프랑스어로 번역되었다.

볼타는 1775년 조지프 프리스틀리에게 편지를 보내 기전반(electrophorus)의 제작을 알리고 이것이 어디까지 새로운 것인지 물었다. 기전반은 마찰로 다시 대전시키지 않고도 전하를 거듭 공급할 수 있는 장치다. 이를 개량한 끝에 나온 콘덴서(축전기)는 1782년 《철학회보》에 소개되었으며, 아주 작은 전하를 모아 검전기로 읽을 수 있게 한다.


삶의 장면들

1776년 11월 초 볼타는 마조레 호수의 앙제라 부근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지팡이로 갈대밭 바닥을 쑤셔 올라오는 기포를 큰 유리그릇에 모았고, 냄새로 보아 이 기체가 탈 것이라고 동행인들에게 말했는데 실제로 탔다. 그는 이튿날 다른 사람들도 불러 이를 보여 주었다. 이후 며칠 동안 코모 부근의 물 바닥을 휘저으며 주머니에 작은 플라스크를 채워 집으로 가져왔다. 그는 진흙 바닥에서는 시험한 곳마다 기체가 탔고 촛불이 꺼진 곳은 단 한 군데였으며, 드러난 암석 바닥에서는 기체가 나오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아이디어를 곧바로 현장에서 시험하고, 증인을 부르고, 하나뿐인 예외까지 기록한 점은 실험 성향과 부합한다. 실험 성향

1801년 11월 프랑스 학사원에서 낭독한 논문에서 볼타는 갈바니 유체를 보통의 전기로 보는 데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 세 가지, 즉 물의 분해를 포함한 반론을 먼저 제시한 다음 이에 답했다. 영국의 편집자 윌리엄 니컬슨은 볼타가 드 라 메트리에게 보낸 편지에 대해 지면으로 이의를 제기하여, 전퇴 안의 액체와 화학 변화도 중요하며 한 가지 금속과 서로 다른 액체로 만든 험프리 데이비의 전퇴는 모든 작용을 금속에 돌리는 데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볼타는 접촉 설명을 유지했다.

반론을 스스로 밝히면서도 자신의 설명을 유지한 점은 독립적 사고와 부합하며, 동시대 비판자의 화학적 반론은 그 태도의 대가를 보여 준다. 독립적 사고


전환점

1791년 갈바니가 근육 운동과 전기에 관한 논문을 내자 볼타는 그것을 '아름답고 위대한' 발견이라고 평하며 개구리 실험을 되풀이했다. 1793년 그는 티베리우스 카발로에게 서로 다른 두 금속이 스스로 약한 전기를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했고, 동물 전기를 포기할 뻔했으며, 다시 시험한 뒤에는 그 역할을 더 작게나마 남겨 두었으나 전기 유체가 근육에 직접 작용한다는 생각만은 '유감스럽게도' 버려야 했다고 알렸다. 카라도리는 볼타가 곧 갈바니의 이론을 아예 버렸다고 전한다. 같은 실험의 흐름은 1800년의 전퇴로 이어졌다.

자신의 증거를 다시 시험하고 아끼던 생각을 버리되 살아남은 부분은 유지한 점은 믿음 갱신과 부합한다. 다만 전퇴에 대한 접촉 설명은 훗날의 비판에도 유지했으므로 이 태도가 무조건적이지는 않았다. 입장 수정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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